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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Sep 18. 2021

퇴근 후의 훌륭한 위로 '스시쿠모'

스시 오마카세 먹부림

남양주에서 교사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야근할 때가 많다. 물론 교사는 아주 특별한 업무가 아닌 이상 자발적(이라 적지만 하고싶은 마음은 1도 없는) 야근이다. 교무실에서 일을 마무리하면 저녁시간 언저리라, 참으로 마음도 몸도 허해서 뭔가 먹고싶어지는 마음이 마구마구 샘솟는다. 혼밥은 마다하지않지만, 너무 접근성이 높으면 아이들이나 학부모에게 목격되어 "처량한 여교사"라고 맘카페에 올라올 수 있고, 더 처참한 건 혼자 밥먹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걸어올 수도 있다. 솔직히 혼밥하는 사람들, 나만 말거는거 싫어해요? ㅋㅋ


아무튼, 이번 일은 맨땅에 헤딩하는 프로젝트라 참 어려운 점이 많아 스트레스를 꽤 받게 되는데, 지난 주 화요일은 특히 좀 마음이 힘들었다. 그래서 화요일, 교무실에 혼자 어둑어둑 할 때 혼자 남은 나는, 남편에게 오늘 저녁은 혼자 해결하겠노라 선언한 후, 주변 맛집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교사가 혼밥할 수 있는, 접근성 낮은 맛집이라. 검색도중 눈에 뜨인 것은 "스시쿠모"라는 업장이었다.


메뉴 구성도 서울의 스시집과 별반 다르지않았고, 스시 퀄리티도 매우 높다는 후기를 읽고 바로 전화해서 예약을 했다. 내 경험상 보통 당일에 혼자 간다고 하면 네타가 남기 때문에 거의 예약을 받아주신다. 식사시간이 30분 남은 상태에서 나는 일을 정리하고 우사인볼트처럼 달려갔다.


식사시간보다 10분 정도가 늦어, 옆에 사람들은 이미 차완무시, 사시미를 끝내고 초밥으로 들어간 상황이였다. 셰프님이 준비하실 때 시간차가 신경쓰이시는 걸 알기에, 다른 때보다 조금 더 빠르게 사진을 찍고 속도를 맞추려 노력했다.


차완무시인데, 위에 덴뿌라같은 알갱이가 올라와있어서 식감이 좋다
전복과 게우소스, 그리고 샤리. 게우소스가 달지 않아서 좋았다
사시미

사시미가 구성이 너무 좋았다. 껍질을 익힌 참돔, 숭어, 찰광어, 연어, 참치까지! 한 점 한 점 먹으면서 노동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는 느낌이었다. 너무 배고파서 빠르게 먹어치운 나는 어느덧 옆에 사람들과 속도를 맞추게 되었다.

안에 시소가 다져 들어간 참돔
잿방어. 역시 기름지면서 쫄깃한 맛이 일품!
참치아카미
참치 뱃살에 트러플까지 올려주셨다
가리비 아부리와 단새우
기름지고 담백한 삼치!

초밥은 샤리가 두둑하게 들어가 입 안을 가득 채웠고 한 스시 한 스시 너무 알찼다. 횟감이 매우 신선하고 밥도 좋게 간이 되어있어서 스시가 입안에 있는 동안 너무 행복했던 것.

다양한 츠마미

츠마미들이 나왔다. 황태조림은 무난했지만 가지를 좋아하는 나는 가지반찬이 너무나도 맛있었다. 전복조림을 먹으면서 이건 사케인데, 입을 다셨다. 차를 가져온게 죄지.

금태와 그 아래에 샤리

나오고 내 눈을 의심한 그것은 맞다. 금태였다. 젓가락으로 생선 가운데를 벌리자 아래의 밥 사이사이로 생선 기름이 들어가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입에 들어가면 당연히 녹지. 디너 5만원에 이 구성, 너무 맘에 든다.

카이센동

참치 등의 횟감이 다져서 들어간 카이센동. 연어 알이 톡톡 터지면서 밥을 생동감있게 만든다. 마무리로 너무 딱이다. 근데 중요한건 마무리가 아니였다 ㅋ 붉은 생선구이가 한번 더 나왔고, 너무 배부른 나는 사진찍는 것을 깜박하고 말았다! 생선구이가 또 나오길래, 아 이게 끝이 아니구나, 깨달은 순간

우리 시메사바, 고등어초밥이 나왔다. 어떤 곳은 살짝 윗만 익혀 주시기도 하는데, 여기는 유자향을 입히셨다. 결론은 너무 너무 맛있었다. 고등어는 익힌 순간 맛 자체가 완전히 변해버린다고 생각하는데, 제대로 숙성된 고등어는 회가 더 맛있는 나다. 혼자서 음음거리면서 눈썹을 움직이고 있으니, 쉐프님이 하나 더 주셨다. 이런게 횡재지요.

그리고 이 어마어마한 후토마끼의 꼬다리를 주시더라. 아니, 이렇게 큰게 나올거였으면 고등어 초밥 하나 더 안먹었을텐데. 아니지, 이렇게 약해지면안되! 생각하며 입의 각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떤 곳으로 입에 넣어야... 한번에 들어갈까. 몇번의 가설과 연구 끝에, 나는 후토마끼를 한 입에 넣고 한 5분동안 씹었더란다. 서빙하는 분이 이제 식사 나온다고 하셔서, 이렇게 배가 부른데 식사를 어떻게 먹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크림게살고로케

이걸 또 내오셨다. 아니 식사라면서요.... "너무 배불러요, 어떻게 쉐프님"하니, "에이 잘 드시던데요 뭐~ 굉장히 맛있습니다!"라는 답변에 젓가락을 들고 고로케를 반으로 갈라보았다.

게살과 녹진한 빵가루가 너무 훌륭했던 것.. 먹으면서 행복한 느낌을 차오르게 만드는 식감이였다. 그 와중에 메밀온면이 나왔는데, 사진도 못찍었다. 면발이 아주 통통했던 걸로 기억한다.

정말 마지막으로 수제 요거트가 나오면서 디너는 막을 내렸다.


교무실에 혼자 남아 업무로 고생하고있던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던 스시집. 이 집이 내 직장과 가까워서 너무 좋다. 남양주에 있어 찾아가기에는 조금 힘들겠지만, 근처에 사는 분들은 꼭 가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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