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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Jan 29. 2023

영어교사로서 바라보는 ChatGPT

너무 똑똑해서 무서워

현재 내가 공부하는 미국에서 ChatGPT는 아주 뜨거운 주제이다. ChatGPT를 아직 모르는 사람을 위해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자연어를 사용하는 인공지능 언어모델이고, 대화 형식으로 산출물을 만들어내서 'chat'이라는 말이 붙었다. 이 프로그램이 나오고 나서 뉴스로 접한 뒤 1월 13일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실험을 해봤는데, 이 녀석 보통 똑똑한 게 아니다. 단순 계산, 검색, 번역뿐만 아니라, 하나의 주제에 대해 스스로 연구를 한 후 논술문을 작성하기도 하고, 주어진 배경과 주제를 바탕으로 시, 소설, 각본 등 다양한 창의적 장르의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심지어 수업지도안도 만들고, 밀플랜, 운동플랜 등 어마어마한 범주로 생산해 낸다. 이렇게 똑똑하니 론칭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용자가 오늘 1월 28일 기준으로 천만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이용자가 백만 명이 될 때까지 인스타그램은 3달 정도가 걸렸다는데, 인기가 여느느 디지털 플랫폼과 겨룰 대상이 안된다.

ChatGPT 사용자 수... 저커버그는 울지요

이러한 이유로 우리 학교를 포함한 미국의 교육기관들은 아주 난리가 났다. 미국 대학교는 평가형식이 대체적으로 논술문(에세이)이라서 그렇다. SAT 같은 5지선다 객관식 문형 시험도 있지만, 이런 시험은 비중이 적고 거의 대체적으로 학생의 글쓰기 능력을 시험한다. 이게 대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중학교,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아이들은 거의 모든 과목에서 글쓰기를 하면서 사고과정을 논리적으로 쓰는 연습을 많이 한다. 그런데 공립학교 영어교사로서 조금 충격적이었던 것이, 학생이 딱 시험날 시험 장소에 와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 과목을 수강하는 동안 혼자서 글을 쓰고 나중에 완성본을 제출하는 것이었다. 이게 교육학적으로는 아주 이상적인 방식이다. 글쓰기는 사고과정을 기록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계속 피드백받고 고치고 하는 활동이 필요하니까 하루 만에 될 리가 없다. 그런데 한국 교육과정에서 저렇게 했다간 민원 어택 당한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학원이나 과외선생님한테 제출 직전에 적어달라 그러고, 그대로 내기 때문이다.

ChatGPT가 만들어준 밀플랜... 하지만 나는 말을 듣지 않지요


이런 얘기를 들으면 '아, 한국은 이래서 안 돼'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렇게 쉽게 판단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너무 많은 것이 걸려있는 내신성적이기 때문에, 평가과정에 대한 신뢰보다는 일단 평가결과부터 좋게 만드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럼 미국은 평가 결과를 그렇게 중요시하게 여기지 않느냐? 그건 아닌 것 같고, 몇 가지 요소가 존재하는 것 같다. 먼저 첫 번째는 미국 사교육 시장이 우리나라보다 그렇게 활개 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학원 선생님이 제2 선생님이지만, 여기 공립학교 아이들은 그런 게 없다. 그리고 또한, 내가 살펴본 결과, 여기는 사람의 글쓰기 능력을 아주 높게 친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존경받는 사회랄까? 사실 일리가 있는 것이, 사람이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논리적으로 글을 잘 쓰는 것이 첫 번째이다. 결국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여기는 글쓰기 샘플을 그렇게 많이 본다. 우리나라도 자기소개서가 중요하긴 하다만 서도, 미국만큼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의 수능점수 = 미국의 글쓰기 능력 이렇게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여기 대학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게 학업계획서고 그다음이 SAT 점수니까. 결국 제대로 해야 할 거, 다른 사람한테 부탁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배우는 거다.


그렇다면 왜 ChatGPT가 미국 교육자들을 화나게 하거나, 벌벌 떨게 만드냐. 왜냐하면 이 도구는 아주 논리 정연한 글을 1초 만에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주제, 길이, 문형 등과 같은 조건을 걸어두면 조건에 아주 적합한 글을 딱딱 만들어낸다. 논술문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구조성이다 보니까, 구조를 아주 판타스틱하게 학습한 이 기술은 필요한 내용을 구조에 뙇 들어맞게 위치시킨다. 이렇다 보니 짧은 논술문뿐만 아니라 감상문, 보고서, 심지어 논문까지 만들어낸다. 이미 89퍼센트의 미국 학생들은 ChatGPT를 사용하고 있다고 보고했고, 아마 이걸 의도하지 않았을 선생님들, 교수들은 아주 당황하고 있을 거라는 거다.


공립학교에서 평가를 진행했던 나로서는 "아니, 그럼 당연히 애들이 ChatGPT사용해서 베끼지, 자기네들이 쓰겠어?" 생각했다.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 못난 선생님이면서도 현실을 직시하는 선생님이라 그렇다. 그러면서 선생님으로서 가장 중요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러면 내가 뭘 가르쳐야 할까?"


사실 영어선생님으로서 ChatGPT는 새로운 녀석이 아니다. 우리의 친구 번역기가 많이 발달해 오면서 아이들은 번역기를 써서 자신이 아예 이해하지도 못하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귀여운 행동을 하곤 했다. 그런데 번역기로 영어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해서 영어문장을 만들어내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없는지는 다른 문제다. 우리는 계산기를 수십 년 동안 가지고 왔었지만, 그렇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덧셈뺄셈하는 능력을 가르치지 않는 건 아니지 않은가. 계산기의 논리가 어떠한지 인간으로서 학습하는 것이 계산기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 아닌가. 그러면 ChatGPT가 논문을 쓸 수 있다고 해서, 아이들에게 논술문의 구조를 가르치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닌 것이다. ChatGPT로 다양한 것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ChatGPT가 어떤 글쓰기 공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게 첫 번째 단계이다.


간호사의 독백각본을 쓰라고 했더니 눈물난당.. 영어수업에서 써먹어야지!

그렇다면 ChatGPT가 있든 없든, 아이들에게 재밌는 수업으로 영어 문장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가르치고, 아이들이 영어문장으로 자신들이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을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 영어교사의 역할이다. 역할은 변한 게 없다. 그런데 여기 미국이 난리가 났듯이, ChatGPT는 평가현장을 어마어마하게 바꿀 것 같다. 가르치는 내용은 똑같다 쳐도, 애들이 가르친 것을 적용하는지 확인하는 평가에서 ChatGPT로 배운 것을 아무것도 적용하지 않는다면, 결국 교육이 허무해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 출시한 지 한 달밖에 안되었는데 이미 교육현장에서의 ChatGPT에 대한 담론은 아주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는데, 여기저기에서 들은 팟캐스트, 읽은 뉴스, 내 생각을 종합하자면 ChatGPT로 인한 평가변화는 이러할 것 같다.


먼저 평가 현장성이 강화될 것 같다. 학생들이 ChatGPT와 같은 기술의 도움 없이 정해진 자리에서 자신의 실력을 진정하게 발휘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미국은 평가로 20장 이상의 보고서나 논술문 과제 대신 1시간 안에 쓸 수 있는 짧은 글쓰기 과제(short burst writing)를 도입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워낙에 공정성에 민감한 나라라 이미 평가현장성이 강화된 과제들이 많이 시행되고 있지만, 미국은 많이 바뀔 것 같다.


둘째로는 글쓰기 과제가 많이 탈구조화 될 것 같다. 의미는 학생들이 구조에 얼마나 적합하게 글을 쓰는지보다는 구조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표현하는지가 많이 강조될 것 같다. 이건 내 경험으로 도달한 결론인데, ChatGPT로 쓴 글인지 인간이 창조해 낸 글인지 확인해 주는 Detector 웹사이트가 있다고 해서 한번 시험해보고 싶었다. ChatGPT한테 먼저 내 강아지(호야)에 대한 단편소설을 쓰라고 하고, ChatGPT가 쓴 글을 Detector 웹사이트에 붙여 넣었더니 인간이 창조해 낸 글일 확률이 18퍼센트라고 나왔다. 효능성이 너무 궁금해져서, 나 스스로 내 강아지(호야)에 대한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보통 단편소설에서 나오는 기승전결 구조를 따라갔고, 언어표현도 단순한 비유 정도를 썼고, 같은 언어로 써야 했기에 영어로 쓴 다음 Detector 웹사이트에 복사 붙여 넣기를 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왔게? 내 글, 인간이 창조해 낸 글일 확률이 16퍼센트라고 나왔다. 왔더 퍽? 내 가설로는, 이 인공지능인지 감지해 주는 인공지능(?) 웹사이트는 구조성이 아주 높은 글을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학생들이 써야 하는 글이 인공지능이 1초 만에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학습의 필요성이 미미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구조에서 벗어난 창의성이 정말 중요해질 것 같다. 그런데 그걸 또 어떻게 평가, 판단하냐고요.


(+추가: 이건 코딩 분야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칠 듯 하다. 코딩은 아주 구조적인 언어니까..? 모르는 분야지만 예상해봤다. 아니면 말고요...)

호야로 귀여운 글쓰라고 했더니 진짜 읽으면서 심쿵사... ㅠㅠ

셋째로는, 선택형 문제들로 판단하는 시험들의 중요성이 낮아지거나, 가격이 저렴해지거나, 인기가 없어질 것 같다. 한국 공교육 현장에서는 코로나 영향도 있지만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보는 5지선다 선택형 문항들이 아주 아주 많이 사용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오류 없는 시험문제 만들어내는 게 너무 힘들어서 (특히 영어) 시험 전이면 아이들과 함께 위염을 앓곤 했었다. 그런데 ChatGPT는 객관식 문제들의 지문이나 문제들을 퓨어 논리라는 무기로 뾰로롱 만들어내기 때문에 객관식 문제들이 어마어마하게 만들어지기 쉬워질 것 같다. 특히 의도하는 영어 문법이나 단어가 가미된 문장을 포함한 지문을 찾거나 만들기가 너무 힘들었는데, 이게 굉장히 쉬워질 것 같다. 아마 수능도 그렇지 않을까. ChatGPT가 한글로 전환되기 전까지는 영어과목으로만 한정되겠지만, 한글 ChatGPT가 만들어지는 건 시간문제일 듯. 토익이나 토플의 듣기 읽기 문제들도 굉장히 쉽게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비쌀 필요가 없다. 가격 안 내리면 도둑놈들인 거다.  

수동태 문형을 넣어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에세이 쓰라고 했더니 기깔남


이것 말고도 변화되는 것이 굉장히 많겠지만, 평가에 관련해서는 생각나는 게 여기까지다. 영어 수업에서 ChatGPT의 사용은 어마어마해질 것 같다. 요즘 대학원 과제로 언어수업모델을 만들고 있는데 이번에 ChatGPT를 사용해서 학생들에게 배우는 언어로 창작과제를 내볼까 생각 중이다. 사실 제2언어로 창작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게, 제1언어로 먼저 내용을 조직해 가지고 그거를 제2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참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ChatGPT를 사용하면, 어떤 장르든 구조를 정해줄 수 있고 아주 좋은 글쓰기모델을 만들어줄 수 있다. 그럼 이미 제2언어로 내용 조직과정이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언어학습자 입장에서는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부분이 높아지지 않을까?라고 나만의 가설을 세워본다. 그리고 ChatGPT의 가장가장 좋은 점은 학생들의 글을 주면 논리성에 대한 피드백이 1초 만에 나온다는 것이다. 똑똑한 선생님들도 그렇게 좋은 피드백을 모든 학생들에게 주기 힘든데, 이건 정말 보석 같은 기능이다.


내 과제 에세이에 대한 피드백.. 교수님도 이렇게 얘기해주진 않았는데 힝


뉴욕타임스 팟캐스트에서 창의적 글쓰기 과목을 담당하는 미국 고등학교 교사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ChatGPT 나오자마자 교직원회의에서 나온 주제는 '어떻게 ChatGPT 사용하는 학생들을 막을 것인가'라고 했다고 한다. 들으면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했다. 여태껏 경험해 본 바로는 교사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를 아이들이 남용하지는 않을지에 대한 두려움으로 교직원 회의 주제가 많이 나오곤 했다. 우리나라는 머리, 화장부터 시작해서 핸드폰까지. ChatGPT의 엄청난 기능으로 물론 아이들이 남용할 부분이 높긴 하다만 서도, 사실 이런 기술과 공존하면서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위해 평가전문가로서 항상 고민해봐야 하는 지점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제발, 교육청은 '인공지능 사용금지를 위한 학습자 정직성 유지 체크리스트 수합' 같은 이상한 공문 보내서 쓸데없는 업무 만들어내지 말길.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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