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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Jun 05. 2021

서른살 부장이에요

나의 계원 언니들에게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잠을 설치고있다. 밤 11시가 지나면 필요없는 감성으로 주절댈 것이 뻔하기 때문에 타자기 앞에 앉으면 안되는데, 새벽 3시에 잠이 오지않는 터라 이렇게 끄적이고 있다. 마음이 매우 싱숭생숭하다.


6월은 나의 업무가 가장 바쁠 때이다. 이미 알고있어 많이 준비를 해온터라 내 팀원과 순탄하게 잘 흘러갈거라 생각했는데 정말 나의 오만함이였다. 인생이 잘 흘러갈거라 생각하면 절대 그렇게 흘러가지않는 법. 코로나때문에 원격수업 관련해서 예전에 신청했던 사업이 전면등교로 인해 취소된줄 알았는데, 이미 예산 편성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공문 하나 없이 갑자기 돈 천만원이 학교 예산으로 쑥 들어왔다. 2학기에 애들은 학교를 나오는데 원격수업때 쓰는 프로그램을 이 돈으로 운영해야한다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거린다.

 

게다가 갑자기 교원평가도 하란다. 한 달 안에 계획 세우고 위원회 심의까지 받으란다. 정말 제일 바쁜 6월에 아주 굵직한 사업 2개를 던져주신 턱에, 일주일간 나는 교장선생님과 교감선생님과 아주 친해졌다. 당신들의 의중을 파악하고 계원들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이 자리가 과연 경력 6년차 교사가 할 수 있는, 아니 해야 하는 것인지. 아직 수행평가 채점도 못했는데. 시험문제도 못냈는데.


이렇게 업무가 갑자기 몰릴 때 회피형 인간인 나의 본능은 방어인 것 같다. 출근하다가 어떤 차가 와서 내 차를 박으면 전치 2주는 나오지않을까?그럼 병가써도 쌤들이 이해해줄텐데. 이런 철없는 생각. 3년차에 학교폭력과 극성 학부모 민원때문에 정말 차를 기둥에 박을 뻔 하다가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 상담을 받으면서 깨달은 점 하나는 나를 방어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나를 해하는 생각을 하게되면 현재 상황을 한번 돌아보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러한 상황을 한번 돌아보기로 했다. 업무가 많이 몰려있는 상황인데, 내 계원들 중 한명은 현재 임신으로 입덧이 매우 심해 참 고역을 겪고 있고 다른 계원은 학급애들이 아주 속을 썩인다. 이런 상황으로 내가 업무를 지시하기가 참 미안해서, 나같은 빌어먹을 피플플리저는 일단 업무가 오면 팀 내 업무 분산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내가 먼저 다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것. 내 소중한 팀원 하나가 나한테 그랬다. 부장님, 그러다가 업무 마비되서 죽으면 어떻게요.


그래서 오늘 또 한번 부장의 자리에서 해야하는 역할을 깨달았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 팀에게 정확한 업무 지시가 필요하다고. 팀 전체의 일을 내가 다 할 수 없으니 우리 팀원들 밥 사드리며 정확하게 업무지시 해드리고 최대한 도와드리며 팀을 운영해야겠다고.


계원언니들 사랑해요. 못난 부장 만나서 미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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