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발자취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별것 아닌 평범한 인생인데도 나이가 들수록 자꾸 옛 추억들을 소환하면서 행복해 지려한다.

몇년 전 서랍 정리를 하다가 40년 넘게 보관 중이던 배지들과 군번줄을 발견하고 반가워 사진을 찍어 두었다.

휘문중, 경기고를 졸업하고 19살에 자원입대 해서 1사단 하사로 전역을 하고 대학을 갔다.

졸업 후 해태음료 인사팀에 근무하다 나와 형과 벤처사업을 하다 아내를 만났다.


주변에선 우리 집을 사업 하다 IMF때 강남 대로변 빌딩 두 채를 다 날려버린 망한 집안으로 얘기한다.

큰형이 사업을 벌여 아버님께 상속받은 내 빌딩에서 20억 대출을 받았다가 IMF가 터지자 한 달 이자만 3천만 원이 되었다. 그렇게 대출 이자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 한 푼도 써보지 못하고 다 날렸지만 형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한 번도 내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망해가던 회사에서 아내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아내와 한강을 달리고 서래섬에서 상봉해 손을 잡고 걸어오면서 말했다.

아마 우리 인생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일지도 모른다고..이렇게 평일 오전 한강에 나와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거기다 돈이 없어 쪼들리기 때문에 더 행복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정신 승리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정말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늘따라 반응이 없어 왜 조용하냐고 물으니 말 같지도 않아서 대꾸할 힘이 없다고 한다.

아내는 항상 이런 텐션이다. 당신은 내가 빌딩 두 채와 맞바꾼 여자라고 하면 제발 빌딩 좀 가지고 만나지

그랬냐며 투덜댄다. 지나고 보면 인생엔 공짜가 없고 내 능력만으로 된 것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결정적인 것은 다 내가 희생한 돈과 시간들을 불쌍히 여긴 하나님 축복으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