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계탕

중년백수 일기

by 일로

아내는 오늘 아침 삼계탕을 끓였다.

어머님이 엊그제 초복날 사주신 닭 세 마리와 챙겨주신 인삼, 마늘, 대추, 알 수 없는 뿌리들을 넣고 삶았다. 아점으로 아이들과 함께 먹을 생각을 하니, 거실 블라인드 밖으로 내리쬐고 있는 햇볕들이 만만해 보인다.

매년 무슨 때마다 우린 모르고 지나칠 절기들 음식을 챙겨서 보내주신다.

정월 대보름 오곡밥과 나물들은 말할 것도 없이, 어머님의 마지막 사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어제 전화를 하셔서 초복 날 삼계탕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초복날 먹는 거라며 못내 아쉬워하셨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을 낳아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을 요즘 들어 더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주어도 주어도 덜 준 것 같은 마음이 바로 부모 마음일 것이다. 어머님 집에서 나올 때면 잔뜩 싸주고도

뭔가 빼먹은 것 같다며 뒤를 돌아보신다. 내가 유일하게 맘껏 내 생각을 떠들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자존감 떨어질 때는 언제 찾아가도 환영받으며 안마의자에 앉자 충전을 하고 돌아온다.


내가 제대하던 해 아버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니 어머님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지금 아내 나이였으니 돌아보면 너무 젊은 나이셨다. 그때 어머님은 재산이 다 무슨 소용이냐며 모든

유산을 삼 형제 명의로 하셨다. 결국 큰 형이 사업을 하다 다 날렸을 때도 몸만 건강하면 된다고 하며

지내셨다. 그나마 있던 쌈지 돈마저 자식들에게 다 내어주시고도 아까워하지 않으신다.

염치가 있어서인지 형들은 어머님 말씀에는 꾸벅한다. 나만 잘하면 형제간 우애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항상 꼿꼿했던 어머님이 사오 년 전 수술 이후 갑자기 할머니가 되셨다. 그렇게 빠르시던 걸음이 느려졌

거동도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래도 아직 모란시장을 지하철로 다니시며 자식 줄 반찬거리를 사서 수레에 끌고 오신다. 자식들 인생의 보약을 자처하는 어머님이 건강히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다.

중년 백수여서 좋은 점은 어머님과 남은 시간들을 많이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행복하고 가장 후회 없을 일은 아마도 어머님 집에 자주 찾아가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