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마루에서 글을 쓰고 있으면 갑자기 아내가 부른다. "오빵빵~~"
안방에서 티브를 보다 웃긴 장면이 나온다던지, 자신만 재밌게 본 프로를 재방한다던지, 심심해 거실로
나올 때 그냥 그렇게 부른다. 난 그렇게 부를 때마다 곧바로 아내에게 달려간다. 거실로 나올 때는 쫓아가
포옹을 한 후 아내 발을 내 발등에 태우고 안방으로 데려간다. 마치 기절한 토끼를 자신의 굴로 끌고 가는
늑대처럼.. 방에 들어설 때쯤 정신 차린 토끼가 도망가면 상황은 종료된다.
아무 이유 없이 부르는 아내 목소리는 마치 "당신을 너무 사랑하니 지금 안아줘요"처럼 들린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때도 있다. 일을 마치고 힘들 때도 그렇게 부른다. "오빵! 빵! "
"나 힘들어 죽겠는데 당신 이대로 있을 거야?" 아니면 "나 고생하니까 더 사랑해 줄 거지?"처럼 들리기도
한다. 거의 매일 카페를 가서 수다를 떨고 오늘처럼 평일 오전에 영화를 보고 오기도 한다.
"좀비딸" 클라이맥스에서 "아~바, 아~바"라고 아빠를 부르는 좀비딸의 외침이 감동적인 여운을 남겼다.
아내는 자신이 재밌게 본 네플릭스나 연극이 있으면 꼭 아이들이나 나와 함께 다시 보고 싶어 한다.
나와는 반대로 자신보단 타인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어 힘들 때도 있다.
현관에서 신발을 세게 내려놓는다던지, 동네 골목에서 큰 소리로 얘기만 해도 시끄럽다고 주의를 준다.
사십 대까지는 숨을 쉴 수 없다며 부부싸움을 하기도 했지만 그 배려의 수혜를 누리다 보니 익숙해졌다.
그렇게 다정하지만 단호함은 끝장이어서 한 번 돌아서면 좀비처럼 무서워진다.
난 어릴 때 엄마에게 따뜻한 사랑을 못 받아 이 모양으로 피해의식이 많다며 나를 변명해 왔다.
나보다 아홉 살 어린 아내의 어린 시절과 대학 알바 얘기를 듣고는 꼬랑지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건 나 자신의 문제이지 누군가를 원망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다가올 내 삶이 안개 속일지라도 아내에게 이렇게 불릴 수만 있다면 행복한 중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은 갑자기 "오~바, 오~바"라고 부른다. 아마도 오전에 본 좀비 영화 탓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