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설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오후이다. 큰 근심걱정 없이 평온하게 종일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구정 전날은 어머님과 우리 집에서 함께 전을 부치기로 했고, 당일에는 처갓집 식구들이 우리 집에서 모인다.
오전에 내가 화장실 청소와 쓰레기 정리를 하고 아내는 빨래와 스팀청소기로 온 집안을 밀었다.
오후에 마트에 가서 과일들을 사 오다가 아내와 실랑이를 벌였다. 차가 너무 더럽다며 아내가 세차를 하자고 했는데, 기름이 있어 그냥 세차만 하면 너무 비싸다며 말렸기 때문이다.
다니던 주유소는 알아보니 세차비가 16000원이나 했다. 아내가 다른 곳을 알아보고 가보자고 하는데
조금 못마땅했다. 연휴기간 그냥 타도 아무도 모를 텐데, 청소에 대한 아내의 강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아내 고집을 꺽으면 싸움이 될 것 같아 마지못해 다른 주유소로 가보았다. 다행히 그곳은 12000원이었고 내부세차는 직접 하는 곳이었다. 내가 내부 청소를 하는 동안 아내는 물티슈로 차 안을 열심히 닦았다. 상쾌하게 차를 몰고 나오는데 아내가 한마디 한다. "이래야 복이 들어오는 거야"
아내는 청소에 진심이다. 외출하기 전에는 꼭 온 집안 청소를 깨끗이 하고 빨래까지 널어놓고 나가야
직성이 풀린다. 예전에는 힘들었는데 이제는 나도 많이 적응이 됐다. 어쩌다 손님들이 우리 집에 오면
모델하우스 같다고 깜짝 놀랄 정도이다. 세차를 마치고 나오며 아내가 던진 말이 내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지저분한 상태로 새해를 맞으려던 내 게으르고 복 없는 행동이 아내에게 들켜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내가 이렇게 깨끗하고 단정하게 살아왔기에 그 많은 축복들이 우리 가정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머리도 2주일에 한 번씩 깎아주고, 옷들도 챙겨주고, 피부 관리도 해준다.
동창들 만나면 미안할 정도로 젊게 보이는 것 또한 아내의 깔끔 성격 덕분일 것이다. 이제 아내가 하자고
하면 더 이상 토를 달면 안 될 것 같다. 사실 설 연휴 지나고 거실 한쪽 벽면에 수납장을 짜자고 해서
망설였는데 무조건 따라야 할 것 같다. 기분 좋은 세차를 한 후 아내와 카페 앉아 노닥거리다 들어왔다.
오늘은 아내가 어머님을 우리가 모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