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백수 일기
오늘은 큰 딸, 아내와 함께 잠실야구장에 가서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보고 왔다.
아침에 큰 아이가 거실로 나와 뜬끔없이 오늘 다 함께 야구를 보러 가자고 했다. 작년에 LG가 우승하면서
큰 딸이 프로야구 재미에 푹 빠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시범경기까지 챙길 줄은 몰랐다.
어제 친구와 갔는데 재밌었다면서, 오늘은 가족들과 가려고 4장을 예매했다는 것이다. 막내는 감기 핑계로
빠졌지만, 우리는 모처럼 한 딸아이의 제안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나도 프로야구를 즐기지만 시범경기는 관심 밖이어서 아내에게 공을 넘겼다. 엄마가 가면 아빠도 간다고
슬쩍 피했는데, 아내가 오케이를 했다. 야구룰도 몰라, 집에선 야구를 질색하길래 안 간다고 할 줄 알았다.
딸과의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렇게 차를 몰고 잠실에 도착하여 야구장을 걸어
들어가는데 잊혔던 옛 감정들이 몰려왔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과 즐거움이었다.
더 놀란 것은 시범경기에 내야석이 거의 찼고, 팬들이 대부분 우리 딸 같은 젊은 여자들이란 사실이었다.
두 딸들을 초등학교 때 야구장에 몇 번 데려갔던 것이, 이렇게 중년의 선물이 되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몇 해 전에도 큰 딸과 야구장에서 단 둘이 야간경기를 보며 즐거워 하던 기억도 떠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야구장의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경기에서 지고도 이렇게 즐겁게 야구를 본 기억이
없었고, 아내마저 야구가 재밌어졌다고 할 정도였다. 아이들과 야구장 들어갈 때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시범경기가 이 정도라면, 토요일 개막하는 프로야구 경기는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기대도 생겼다.
왠지 올해 아내까지 합세한다면 우리 가족의 잠실 야구장 나들이는 좀 더 잦아질 것 같다.
사람은 뭔가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이 있어야 인생이 재밌어진다고 했다. 너무 효용과 결과를 따지는 인생
보다는, 무용하고 쓸데없는 일들을 즐기는 것이 오히려 멋있고 행복한 삶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가성비 인생을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설레는 나의 야구장들을 찾아 어슬렁거려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