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 없는 감옥 2020년 1월 5일
오늘은 아내 생일 전날이었다.
아내 선물을 사러 가기로 하고 친구들 약속이 있어 나갔다 오는 바람에 아내는 삐져 있었다. 강하게 못 가게 하지 않았지만 서운해하는 모습만 보여도 마음이 불편해져, 늦게 가도 된다며 쇼핑을 가자고 했다.
아내는 그렇게 불편하게 쇼핑하고 싶지 않다고 해, 할 수없이 그냥 나갔다.
친구들과 놀아도 마음이 불편해 게임도 재미가 없어져 아내가 원망스러워지더니 집에 가는 것조차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일찍 돌아왔으나 시큰둥한 아내 모습을 보니 위축되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 혼자 몇 마디 허공에 구시렁대다가 방안 공기가 불편해 마루로 나와 컴퓨터 책상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 내내 집에서 아이들 픽업과 집안일을 돕다가 하루 잠깐 놀고 오는 게 전부인데 이것마저도 이렇게 쩔쩔매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남편의 유일한 외출을 이해해 주지 않는 아내가 원망스러웠다.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어떻게 이런 사람과 어떻게 살아왔는지 신기하고, 앞으로 이런 여자와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기도 한다.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아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인생 목표로 삼고 있는 남편을 서운해하는 아내가 숨 막혀왔다. 사실 아내가 심한 바가지를 긁은 것도 아니고 살짝 투정한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내 성격 탓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걱정하다 보니 죄 없는 아내가 미워지는 참사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나 스스로도 놀란 것은 아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며 아내 예찬 일기를 쓰다가도, 아무것도 아닌 일에 아내가 갑자기 나를 숨 막히게 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이것은 내 갱년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십 중반으로 가면서 정신이 더 멍해지는 것도 같고, 육체의 활력 호르몬이 떨어져서인지 마음이 강퍅해지는 것도 같다.
또 내 정신 질환적 성향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받지 못하면 안 된다는 강박증과 나를 미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상대를 공격하려 드는 것이다. 백수가 되어 당당하지 못하다 보니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도 같다.
내가 만약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나를 진단하고 돌아보지 못한다면, 중년 이후 스스로 나를 철창 없는 감옥에
가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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