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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Sep 02. 2024

아내 생일과 대치동 학원

결혼 20년 차 일기

아내 생일과 대치동 학원   2020년   1월  6일


 어제 서로 침대에 누워 말도 없이 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침부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어렵게 아내에게 말을 붙여 보는데 반응이 역시 시큰둥하다.

이러다간 오늘 예약해 놓은 음식점도 가지 않겠다고 나올 것이 불 보듯 하고, 그러면 사태는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았다.


 일단은 운동을 가서 시간을 벌어 보려고 나가는데, 아내가 규은이 학원에 데려가지 않느냐고 묻는다.

내가 또 기억을 못 하고 그냥 혼자 나가려 했던 것이 민망해, 규은이 학원 끝나면 다 같이 점심 먹으러 나가자고 했더니 그러자고 한다.

일단 다행이다 싶어 안도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아내를 쫓아 들어가 와이프 무서워 숨도 못 쉬겠다며 말도 안 되는 투정을 부려 화해를 청해 본다.


 운동을 하고 케이크를 사들고 규은이를 픽업해서 집으로 오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가는 차 안 공기는 서먹했으나 음식점에 들어가 케이크를 가져오고 맛있는 음식들이 나오니 분위기가 좋아졌다. 기대 만큼의 요리는 아니었으나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었기에 아내 생일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 아이들과 우리가 자주 가는 근처의 마리 카페로 가서 가족사진도 찍고 생일 카드도 읽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5시가 되어 여은이를 대치동 학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왔는데, 규은이도 오늘 대치동 학원 상담을 가야 한다고 했다. 차도 막히는 출퇴근 시간에 다시 대치동을 가려니 못마땅했지만, 지은 죄가 있어 아내의 말을 따라야 했다. 몇 군데 상담을 받고 한 곳을 결정해 내일부터 바로 다니기로 해 다는생각이 들었다.

큰 딸이 막상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대치동 학원을 다니다 보니 너무 늦게 시켰다는 후회가 밀려와 막내는 2학년 때부터 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래저래 아내의 판단은 항상 옳았고, 나는 마땅히 따르는 것이 정답이었다.


 저녁 9시가 넘어 아내가 운동을 끝내고 들어오자 나는 고스톱 판을 벌이고 와인을 준비했다.

모처럼 둘이서 와인 병을 마시고 쌓였던 감정들을 풀어내며 고스톱을 쳤다.

나의 못난 정신 상태로 말미암아 항상 우리 부부는 살어름판을 걷는 것 같지만,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행복한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아내를 사랑하려고 하면 한 없이 약하고 측은해 보이는데, 조금만 삐딱한 마음으로 보면 너무 강하고 독해 보여 도망치고 싶어 지니, 내 마음이 얼마나 간사하고 못났는지 알 것 같다.

세상일이 다 그럴것 도 같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간사가 다 정 반대로 보여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삶에서 중용이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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