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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Sep 04. 2024

도박꾼 남편과 벽 같은 아내

결혼 20년 차 일기

도박꾼 남편과 벽 같은 아내     2020년  1월  24일


 어제도 친구들 모임에 가려다 아내와 싸우고 나가는 바람에 오늘 아침까지도 부부 싸움을 해야 했다.

오후에 아내와 고스톱을 치다가 저녁때 아이들과 삼겹살을 먹자고 하여, 오늘 친구들 모임이 있다고 하니 신나게 치던 고스톱을 그만하자며 기분 상해했다.


 왜 그렇게 자주 가냐며 투덜대는 아내에게 그래봤자 한 달에 두세 번이고 잠깐 가서 놀고 오는데 뭐가 문제냐고 항변했다. 그러자 아내는 그럼 얘기 좀 해보자며 나보고 앉으라고 했다.

나도 어쩌다 친구들 만나는 것조차 싫어하는 아내가 신경 쓰여서 한 번쯤 말을 하고 싶었기에 당당히 얘기를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들 하고 도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너도 잘 아는 대학친구들하고 잠깐 있다가 오는데, 왜 싫으냐며 내가 이 정도도 못하냐며 이러다 숨 막혀 죽을 것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내는 어쨌든 그것이 당신 인생에 뭐가 좋을 게 있냐며 차라리 술을 먹던지, 골프를 치는 게 낫다며 어깃장을 놓았다. 자신은 신혼 때 내가 했던 도박 때문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당신이 아무리 친구들과 재미로 한다고 해도 싫은 감정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총각 때 하우스도 다녔고, 신혼 초에는 자주 도박을 하러 간 전력이 있어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내를 설득해서 나의 유일한 인정받고 싶었지만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아내 마음은 벽과 같았다. 그렇게 서로의 입장만 반복하다 보니 언성이 높아지며 또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답답함을 참아내 마음을 풀어 주고 나가기 위해 너스레를 떨었지만 더 비참한 기분이 되어 집을 나섰다.


 지하철을 타러 가는데 화가 나기 시작했고 생각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

나처럼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 얼마나 있다고, 어쩌다 친구들 만나러 가는 것조차 맘 편히 보내주지 않는 아내가 싫어졌다. 그런 완벽한 남편을 원하는 아내가 힘겹게 느껴졌다.

친구들 만나 하소연을 하니 다들 중년에 이렇게 건전한 모임이 어디 있냐며 여자들이 문제라며 성토했다.


 마음이 불편하니 재미도 없고 끝나기로 한 11시가 다가와 집에 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집에 다가오는데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감정을 숨기고 잘 놀다 온 것처럼 들어가면 그냥 지나갈 일인지 알면서도 이 감정을 숨기면 안 될 것 같았다.

 안방에 들어가니 아이들과 아내가 웃고 떠들며 미스터 트롯을 보고 있었는데, 나는 아무 말 없이 옷을 갈아입고 마루로 나와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혼자 새벽 3시까지 마시고 아침 9시가 되어 운동을 하러 나가려는데 아내가 붙잡아 세웠다.


 오늘 아이들과 연극을 보러 가기로 했는데 안 갈 거냐며 말을 건넸다.

그렇게 얘기를 다시 시작했으나 역시 서로 자기 입장만을 얘기하다 보니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이었다.

더 이상 말하면 언성이 높아질 것 같아 연극 시간을 물어보고 집을 나갔다.

어머님 집에 가서 없는 어머니께 화풀이를 하고 씩씩거리며 돌아와 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다.

그렇게 화제를 돌리니 자연스럽게 우리 싸움은 덮어졌고 아이들과 무사히 연극을 보고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 부부싸움을 통해서도 부부가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기란 정말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오히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로의 입장만 극명하게 드러나며 그런 상대방이 벽처럼 느껴진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다만 싸움할 때 마음 속에 있던 불만들을 끄집어 내 시원한 느낌도 있고, 상대방 고충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되는 계기는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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