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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Sep 11. 2024

마지막 1%

결혼 20년 차 일기

마지막 1%    2020년  8월  11일


어제저녁때 또 부부싸움을 할 뻔했다.

어제는 아내가 오전부터 바쁘게 회사에 갔다가 밤늦게 일을 마친 힘든 날이었다.

고생한 아내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려고 보통 여자들 같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아내를 칭찬했다.

이런저런 말로 아내를 위로하니 아내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니까 하는 거라면서 아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자꾸 친구들 만나러 갈 거냐고 하는 것이었다.


아내의 투정 어린 소리였지만 내게는 너무나 아프게 들려왔다.

일주일 내내 집에서 아이들 뒷바라지하다가 금요일 저녁 잠깐 친구들 만나고 오는 것인데 또 그러나 싶었다.

그래도 속을 삭히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용돈이 없냐고 묻기에 괜찮다며 지난 금요일에 따온 돈이 있다며 자랑스레 얘기했다.


그랬더니 돈 안 따와도 좋으니 도박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도 기분이 상해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내가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주에도 몇 개월 만에 친구들 만나서 놀고 있는데 잠 깨우지 말고 일찍 들어오라는 카톡을 보내어 서둘러 집에 왔던 불편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단 한 번도 맘 편히 보내 준 적이 없는 아내가 너무 야속하게 느껴졌다.

어쩌다 친구들 만나러 갈 때마다 싸웠던 기억들까지 떠오르며 숨 막힐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제 자신이 돈 번다고 더 잔소리가 심해지는 것 같았다. 지난 금요일에는 잠을 깨웠다며 다그치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차갑게 식어져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있자 방안 공기가 무거워져 아내는 아이들 방으로 나가버렸다.

아내가 아이들 방에서 수다를 떠는 동안 나는 티브를 보면서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마침 부부싸움에 대한 어느 강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마음이 풀어지고 있었다.

아내에게 제발 친구들 만나는 것은 더 이상 잔소리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실 결혼 후 매번 이 주제로 싸웠고 여러 차례 얘기도 했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도 아내의 이런 모습에 부딪히면 분노가 치밀고 미워진다.

내 최소한의 숨구멍이니 제발 막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부부싸움은 되도록 끝까지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을 남겨두는 편이 좋다는 그 강사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생각해 보니 아내도 억울할 것 같았다. 자신이 못 가게 한 적도 없고 내가 위로해 주자 투정을 부린 것뿐인데 혼자 삐져서 말을 안 하니 아내도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티브 강연 덕분에 기분이 풀어져 아이들 방으로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화해를 청하니 아내도 모른 척 받아 주었다.


 이건 어쩌면 남자들의 숙명이고 여자들의 본성인지도 모른다.

아내들은 남편을 향해서 계속 잔소리와 투정을 하는 것이고, 남편은 그것을 감내해야지 비로소 원만한 부부관계가 형성되는지도 모른다. 그런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 입막음을 시키면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형성될 수 없을 것 같다. 내가 조근조근 따지며 제발 이것만은 얘기하지 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 아내의 일상적인 사소한 불만들을 풀 수가 없을 것이다.


 아내가 정색을 하고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 이상, 아내의 그런 잔소리를 흘려보내면 되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얘기를 하자며 끝을 보려 했겠지만, 그냥 이대로 서로의 불만을 조금씩 인정하며 사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 같다.

아내도 나에게 1%의 불만을 얘기할 구멍이 필요한 것이고, 나도 아내에게 그 마지막 1%를 채우려는 욕심을 버려야 더 행복한 부부생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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