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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로 Sep 24. 2024

내가 의사도 아니고

기억나는 부부싸움들

3. 내가 의사도 아니고


 그 이후로는 큰 싸움은 없었는데, 어느 날 대학 동창 중 변호사를 하는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저녁때 시간 되면 술 한잔 하자는 것이었다. 너무 반가워 약속을 잡고 술을 먹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 너무 배가 아프니 당장 와 줄 수 없냐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갑자기 일어날 수도 없었고, 무엇보다 아내가 일부러 나를 빨리 오게 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도 친구들과 약속이 있을 때면 여러 이유를 만들어 방해를 했었다는 피해의식 때문이었다. 내가 가도 낳게 할 수 있는 의사도 아닌데 굳이 지금 가야 하냐며 일단 약을 먹으라고 했던 것 같다. 그냥 배탈이라 생각했고 한편으론 아내가 나를 빨리 오게 하려는 의도라 생각했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친구와 술자리를 마치고 서둘러 들어갔는데 진짜 많이 아팠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너무 심하게 배가 아파 아이들을 볼 수가 없어 시어머니까지 불렀다는 것이다.

그것도 낮에 우리 집에 계시다 가신지 얼마 안 된 시어머니를 다시 오게 했을 정도로 많이 아팠다는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지나간 일이 될 줄 알았는데, 그 사건은 두고두고 아내의 분노 버튼이 되어버렸다.

지금도 서운한 일이 있을 때마다 무심했던 남편을 상기시키는 사건으로 소환되고 있다.

내가 의사도 아닌데 왜 가냐고 했던 말이 그렇게 서운했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아내가 그때 더 크게 화내고 싸움을 걸만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만 해도 독박육아란 말 자체가 없을 정도로 결혼하면 여자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당연했다.

남자들은 부엌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어색한 시절이었다. 사회생활하면서 늦게 들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고 멋있어 보이기까지 했다. 사십 초반이다 보니 친구들과 인맥을 넓히는 것이 큰 투자라 믿었던 나이였다.


 그때는 변호사 친구와 있는 것이, 배탈 약 사들고 가는 것보단 훨씬 남자다운 일이라 생각했다.

만약 내가 집으로 달려갔다면 아내는 지금까지도 그 순간을 고마워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많은 부부들이 이런 문제들로 끊임없는 갈등을 할 것이고, 나도 예외는 아니다.


육체의 정욕과 정신의 쾌락은 언제나 내 이성과 양심을 마비시킨 채 달려가려 한다.

아무도 자신의 뇌를 이길 수 없고 우리 모두는 본능에 충실한 인간임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조심씩 인생 방향이 틀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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