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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성공

성공에 대하여

by 일로

내가 알던 성공


내가 알던 성공은 사회적 성공이었다.

모두가 성공이라 할 만큼 사회적 지위가 높던지, 부를 크게 축적해야 성공이라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 대학을 갔고 취업과 사업도 했었다. 모두 성공을 위해 달려가고 있었고 나도 열심히 쫓아갔다.

그러나 크게 성공하고도 불행해진 사람들을 보면서 성공보다는 행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16년 전 마흔에 쓴 "젊음은 기구할수록, 희망은 희박할수록"에 정리된 내용이다.

행복을 위해 성공해야지, 성공 자체만 쫒다 보면 불행해질 수 있다는 추론이었다.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으며, 그중에서도 부부관계에 달려있다는 결론이었다.

그런데 뭔가 찜찜했다.


내 생각은 맞는 것 같은데 마치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변명 같기도 했고, 나조차도 성공했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는 없었다. 마흔 정도 살아보니 부부관계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며 성공을 위해 가정을 희생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자녀 교육도 아이들 행복이 우선이고 공부나 대학은 그다음 문제라는 생각이었다. 행복한 가정이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교육이어서 특별한 사교육을 필요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경제 형편이 되지 않는 부모의 변명 같아 아이들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내가 알던 사회적 성공과 내가 생각해낸 성공과는 방향이 다르다는 생각에 우리 부부만의 흔들리지 않는

소신 필요했던 시기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내 나이는 오십이 되었다.

정신없이 달려와 쉰이란 나이가 되었을 때 문뜩 인생에서 실패했다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내가 알던 성공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고 이제 그 가능성마저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아니 성공이란 단어가 허황돼 보일만큼 하루하루 사건 사고들을 헤쳐 나가기도 버거웠던 세월이었다.

주위 친구들을 돌아보면서 이 정도면 나도 잘 살고 있는 거라며 변명하고 위로했다.

그나마 내가 성공보다는 행복에 방향을 맞추고 살아왔다는 것에 큰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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