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일 설교는 "가장 낮아지심으로 가장 높아지신 예수님"이란 제목이었다.
지난 한 주 분노하고 상처받은 우리들 마음을 위로하고 어루만져 주시는 말씀이셨다.
하늘 보좌에서 인간으로 내려와 그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왜 억울해하며 다투지 않으셨을까?
진리와 진실 그 자체였음에도 왜 자신을 대변하거나 타인을 설득하지 않으셨을까?
내가 분노하고 다투는 까닭은 내가 옳다는 확신에 찬 허영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를 드러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그렇게 다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내 허영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떠벌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잘났다고 믿기에 상대방을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것이다.
불안의 반대말은 사랑이란 말씀이 와닿았다.
두려움과 불안 때문에 다른 생각과 신념들을 공격하고 끌어내리려 한다.
내 안에 사랑이 있다면 그렇게 미워하며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 딸들의 어떤 행동들도 사랑으로 감싸며 인생 밑거름이 될 거라 믿고 있듯이 말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따르고 싶어지는 것은 주장하지 않으셨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자들 마저도 등 떠밀지 않으시고 가장 낮아짐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내 생각들을 비우지 않고서는 단 한 사람에게도 사랑을 보일 수 없다.
사랑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무슨 보람과 흔적을 남기고 갈 수 있단 말인가?
모쪼록 척박한 내 마음에 인간에 대한 예수님 사랑이 스며들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 사랑이 있다면 내 삶이 죽음보다는 나은 삶이라며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다투고 주장한다면 내 허영이 하늘을 찌르고 있는 것이다.
그 사랑으로 화합하며 낮아지는 겸손한 삶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