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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 만들기

중년 백수 일기

by 일로

어제 아내와 매봉역 카페거리를 우연히 갔다.

매봉역에서 양재천까지 가는 길에 하나둘 카페와 갤러리들이 들어오더니 지금은 제법 핫한 거리가 되었다.

마흔 살까지 이 동네 초입 럭키부동산에서 공인중개사로 3년을 일했던 터라 추억이 많은 동네이기도

하다. 17년전 그 동네 골목을 누비던 내 모습을 떠올리니 참 운이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좋은 위치의 부동산에서 꿀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마흔 살이 되던 해 그곳을 나왔다.

대책은 없었지만 마흔 이후에도 이곳에서 안주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무모한 그 결정이 내 인생을 상상할 수 없었던 길로 데려다주었다.

지금도 그런 선택의 시기라 생각한다.


중년 백수 생활은 달콤하지만 4년이면 충분한 것 같다.

내년이면 아이들도 대학 4학년이 되니, 나도 중년 백수에서 졸업을 준비해야 한다.

이제 내 인생 최종 꿈이었던 그림을 향해 달려가 보자.

그림으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될 때 그리기로 했던 나와의 약속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카페를 나와 양재천으로 나가며 갤러리들을 들어가 보았다.

너무 멋진 그림들과 화가들 약력들을 보니 주눅이 들기도 했지만 그러면 어떤가.

내 몰입과 행복을 위해 그리면 되는 것이고 더 이상 돈은 필요 없다.

뻔뻔한 중년 백수에서 적어도 열심히 사는 화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하니 거실을 작업실로 하라고 한다.

오늘까지 거실에 작업실 레이아웃을 하느라 잠을 설치며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이 방향이 좋았는지는 언젠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무모한 도전일지라도 설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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