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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풍경

중년 백수 일기

by 일로

쏜 살 같은 시간과 계절을 생각한다.

정말 엊그제 같은 겨울이 있었다.

2021년 1월 겨울.. 큰 아이가 수능시험 대학 원서를 접수해 놓고 결과를 기다리던 겨울이었다.

설레는 1월을 꿈꾸듯 보내고, 다시 12월 막내까지 수시 결과를 기다리며 그해 겨울은 그렇게 지나갔다.


지난 4년은 내 삶에서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던 것 같다.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고 백수가 되어 글 쓰고 그림 그리며 달리기를 시작했다.

넉넉한 살림은 아니어도 아내가 취직을 하면서 그런대로 굴러갔다.

아내 눈치가 보이긴 했어도 그만큼 고마움에 더 행복했던 것 같다.


큰 아이는 장학금과 과외 알바로 동생 용돈까지 챙기며 부담을 덜어줬고, 양가 도움들도 빼놓을 수 없다.

두 딸들이 교환학생과 재충전으로 휴학도 했지만 벌써 내년이면 4학년, 3학년이 된다.

달려가는 시간이 아쉬워 아이들이 계속 대학생이면 좋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 오십 중반 누렸던 꿈같은 백수 시간들을 청산해야 할 것 같다.


아내 직장 분기별 휴가 덕에 둘만의 여행도 갈 수 있었고 멋진 카페들도 자주 찾아다녔다.

2024년 동네 문화원이 생겨 그림을 시작했고 두 번째 에세이 책도 냈다.

일주일에 한두 번 한강에 나가 달리기를 하고 아내와는 매일 붙어 다니며 수다를 떤다.

오랜 주식 투자실패 경험 덕에 작년부터 꾸준히 수익을 내며 아내에게 선물도 하고 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 더 감사하고 기뻐하지 못함에 죄스런 마음이 들기까지 한다.

인간은 어떤 축복도 당연함이 되어, 채워지지 않은 그 무엇에 공허함을 느끼는 존재이다.

어쩌면 지금 내 모습이 그런지도 모른다. 아마도 간절한 목표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뻔뻔한 백수보다는 당당한 화가로 불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 같다.


우연과 공짜는 없다. 그해 겨울이 아름답게 기억되는 건 간절함 때문일 것이다.

중년에 맛볼 수 있었던 대학생활도 이제는 아이들과 함께 졸업을 준비해야 한다.

인생 2막의 출발을 위해 좀 더 치열하게 세상의 허기를 찾아 채워가야 한다.

내년부터 그림을 즐기는 화가로 여러 공모전에 도전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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