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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y 26. 2023

포르투와 에그타르트

포르투 2

포르투에서 세 번째 날이 밝았다. 그야말로 해가 너무 쨍쨍해서 눈을 번쩍 뜬다. 어제는 처음으로 혼자 맞는 아침이라서, 그리고 에그타르트가 먹고 싶은 마음으로 일어났는데. 오늘은 벌써 혼자가 익숙한 아침이다. 어제보다는 덜 기쁜 마음으로 에그타르트 맛집을 찾아간다. 이틀간 먹어보니 사실 맛이 거의 비슷했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기로 한다. 그냥 아주 보드랍고 달달한 에그타르트를 저렴한 가격에 두 개나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하면서 걸었다.

맨 처음 먹었던 에그타르트는 3대 맛집 중 하나라는 만테가리아. 이곳 3대 맛집들은 모두 체인으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몇 블록 안에 같은 이름의 가게가 또 있었기 때문이다. 9시에 마감이라고 했는데 에어비앤비에 체크인을 하는 사이 8시 45분이 되어버렸다. 호스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그가 사주를 봐주는 바람에 아주 늦게 나와버렸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숙소는 에그타르트 맛집과 한 블록 거리였으므로 그냥 열렬히 뛰어갔다.


누가 봐도 카페를 마감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애절한 마음으로 에그타르트가 솔드아웃이냐고 물었다. 솔드아웃보다 에그타르트에서 더 갸우뚱하기에 냅다 나타, 나타 하고 외쳤다. 아무래도 에그타르트 맛집들에 나타라는 이름이 있는 게 그 명칭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저쪽에 있다며 7개 남은 나타를 가리켰다. 그중 나는 두 개, 현아는 한 개를 골랐다. 마음 같아선 7개를 다 먹고 싶었지만 돈도 없고 살도 찔 거고 앞으로 남은 날들이 많았기 때문에 참기로 했다. 만약 7개를 다 샀어도 8.4유로니까 만이천 원밖에 안 하는 거였다. 하지만 늘 돈이 문제인 것은 아니다.


만테가리아 에그타르트는 시나몬 향이 강하게 났다. 아주 바삭해서 대충 씹고 넘기면 목이 긁힐 정도였다. 생각보다 많이 달지 않은데 커스터드 크림은 아주 보드랍고 말랑해서 한입에 꿀꺽 삼켜버리고 싶은 맛이었다. 두 개를 사면 손바닥만 한 작은 종이 상자에 포장해서 주는데 그게 너무 야무져서 맨날 가고 싶어졌다. 본래는 내용물이 중요하지만 때로는 포장이 어떻게 되어있는지에 따라 다른 인상을 주는 법이다. 하나는 식당에서 먹어도 되는 줄 알고 꺼냈다가 눈초리를 받고 집어넣었다. 결국 두 개 다 광장에 앉아서 길빵을 했다.


본래 홍콩 스타일 에그타르트를 더 선호했다. 아마 가성비 때문이었던 것 같다. 포르투갈식 에그타르트는 너무 얇고 작고 비싸서 하나만 먹기엔 조금 처량하다고 느꼈다. 게다가 내가 사는 집 주변에 홍콩식 에그타르트를 아주 맛있게 만드는 집이 있기 때문에 그걸 더 좋아했다. 그런데 포르투까지 왔으니 진짜를 먹어봐야 하지 않을까. 하루에 두 개로 제한한 것도 내 기만일 수 있다. 여기서밖에 못 먹는 걸 애껴먹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나 제한 속의 자유가 더 짜릿한 법이다. 나는 매일 다른 가게에서 나타 두 개씩을 정성스럽게 음미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다음 날. 이번에는 나타 도우로 라는 집을 찾았다. 아무래도 3대에는 못 드는 것 같다. 체인점도 없고 웨이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치만 나타 종류는 제일 많았다. 상큼한 과일맛도 꽤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초면에는 기본을 먼저 맛봐야 하는 법. 오리지널 하나와 포르투 와인맛 하나를 주문했다. 와인맛 나타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결론은 오리지널 승. 와인맛도 신박하고 포도향이 쌉싸름하게 올라오는 게 맛있었지만 갓 나온 오리지널을 이길 수는 없었다.


여기서는 두 개를 샀더니 네 개를 담을 수 있는 상자에 담아줬다.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에 길에서 열심히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다가 다 먹어버렸다. 하지만 걸으면서 먹다 보면 집중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가장 달지 않고 바삭한 곳이었다. 한국인은 달지 않은 디저트에 환장하는 법이다. 가장 괜찮은 집이었는데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으니 다시 한번 사 먹어볼 것. 아, 그리고 현아가 스페인에 가 있는 3일간 에그타르트를 많이 먹어보고 가장 맛있는 집을 골라서 소개해주기로 했다. 아마 이곳엔 걔를 꼭 데려갈 것이다.

다음은 오늘 아침에 사 먹은 파브리카 다 나따. 가장 관광지스러운 곳이었다. 2층 카페에 들고 올라가서 먹어도 되는 곳 같았다. 보통은 먹고 가면 조금 더 비싸지던데. 처음으로 줄도 제대로 서봤다. 비록 5분도 안 서있었지만. 앞에 한국인 여자 두 분이 무슨 커피를 먹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나도 좀 이따 카페를 가지 않을 예정이라면 여기서 커피도 마시고 싶었지만 두 번이나 마실 만큼 먹고 싶지는 않았다. 돈도 아까웠고. 나는 그냥 오리지널 에그타르트 두 개면 충분했다.


이번에는 종이봉투에 두 개를 모두 받았다. 나타를 달라고 말해야 하는데 에그타르트를 달라고 말해버려서 종업원을 당황시켰다. 실은 나도 당황했다. 나타를 사가는 길엔 부러울 게 아무것도 없었다. 거칠 것도 없었다. 숙소로 다시 돌아가면서 하나를 꺼내어 먹었는데 지금까지 중에 가장 달콤한 맛이었다. 에그타르트 표면에 있는 설탕 코팅 같은 게 제대로 느껴졌다. 그리고 가장 덜 바삭했다. 커스터드는 모두 비슷했다. 그런데 가장 달고 덜 바삭했기 때문에 다시 가지는 않을 것 같다. 다른 맛집들이 너무 많아서 미안하게 됐다.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목이 너무 말라서 제로 콜라를 사러 갔다. 유럽은 마트 빵도 맛있기 때문에 혹시나, 하고 한번 쓱 둘러봤다. 그런데 1.2유로에 손바닥만큼 큰 나타를 팔고 있는 게 아닌가. 아주 푸석하고 담백해 보이는 빵을 다섯 개씩이나 사가는 아저씨들 뒤에 줄을 서서 왕 큰 나타를 하나 사 왔다. 저들은 왜 나타를 사지 않는지 궁금해하며 돌아왔다. 먹어보니 그들의 선택이 단번에 이해됐다. 결도 엉망이고 크림도 없고 축축하고… 예쁘고 크기만 한 나타는 어떤 담백한 빵보다도 밋밋한 맛이었다.


내일은 마지막으로 나타 리스보아라는 집을 가볼 예정이다. 3대 맛집과 나타 도우로를 가보는 게 나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현아가 내일 저녁에 돌아오면 가장 맛있었던 집으로 데려갈 생각이다. 일단 나타 도우로는 확실히 데려가고, 하나는 아직 모르겠다. 만약 리스보아가 진짜 맛있으면 거기로 데려가고, 아니면 처음으로 갔던 만테가리아를 데려갈까. 아무래도 현아가 이 글을 읽고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을 고르는 게 나을 것 같다. 뭐가 됐든 마트 꺼만 안 먹으면 된다.

포르투에서 6일 밤을 보내고 나면 파리로 넘어갈 것이다. 그러면 다시 삼총사로 합체될 것이고. 이제 에그타르트는 더 비싸고 덜 맛있는 곳들에서 먹게 될 것이다. 에그타르트를 맘껏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포르투에 다시 돌아올 이유는 충분하다. 빵과 커피가 맛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싶은 마음이니까. 그래서 지원이에게도 이탈리아를 꼭 가보라고 말했다. 비록 나처럼 열렬히 빵을 사랑하다가 눈에 띄게 살이 붙어버릴지도 모르지만, 그런 게 여행의 민낯이고 묘미니까…


여기는 벗고 다니든, 입고 다니든, 살이 찌든 말든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 모두가 적당한 살을 가지고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다닌다. 그래서 나도 반쯤은 헐벗은 채로 에그타르트를 먹으면서 걷는다. 무얼 먹든,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누구도 상관하지 않고 걷는다. 한국에서도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걸을 수 있다면. 누구도 난도질당하지 않고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걸 하며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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