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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r 11. 2022

꿈꾸듯 몽롱한 하루를 보내며

새벽 다섯시에 잠든다면


항상 불청객처럼 들이닥치는 친구들이 있다.

“즉흥”이라는 단어를 이마에 걸고 다니는 친구들,

지금보다 더 예민했던 시절에는 그들의 광기를 감당하기가 어려워

무방비 상태의 나는 계속해서 어딘가로 숨기 바빴다.

그렇다고 너희를 덜 사랑한 건 아니야,

다만 내가 준비되지 않았을 뿐.

이제는 그 애들을 받아들이는 법을 안다.

늘 계획에 맞게 짜여진 내 하루를 조금은 놓아주는 것,

몇시쯤이면 집에서 글을 쓰고 있을 줄 알았건만

이 친구들의 손을 잡고 있노라면 언덕 위 카페에 가있거나

나보다 더 무방비 상태에 있는 친구에게 당장 뛰쳐나오라고 하는둥

“갑자기”의 연속으로 하루를 보내곤 했다.


오늘도 그 비슷한 날이었다.

생리통으로 찢어질 듯한 배를 부여잡고

돈까스 뷔페와 쇼핑을 계획한 친구들에게 페이스타임을 걸었다.

이 친구들과는 한번의 만남이 연속되는 경향이 있었다.

어제는 “갑자기” 내 수업을 따라와 학교 앞 돈까스집을 데려갔는데,

수업이 끝나고 그 애들을 찾아 가려는 소소한 계획이 무색하게도

나를 내려다주고는 바로 집으로 향해버린 것이 아닌가.

게다가 내가 추천한 돈까스 집에 가면서는 새로 생긴 돈까스 뷔페 이야기를 하며

내일은 그곳에 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그들이었다.

돈까스가 전혀 땡기지 않았던 나로서는 오늘의 쇼핑에만 참전하고 싶었는데,

이런저런 이유와 생리통이 겹쳐 집에 꼼짝 않고 누워있어야만 했다.


결국 잠에서 깨어 이 마약 같은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말았다.

단, 조건은 엽떡을 사올 것.

엽기떡볶이 덜매운맛

이 친구들에게는 우리집이 왠지 익숙한 쉼터였기 때문에

(어릴적부터 우리집은 간식이 많고 부모님은 없는 아이들의 놀이터와 같았다.)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우리는 ‘덜매운맛이라는 거짓으로 포장된 매운 떡볶이를 시켰다.

실없이 웃는다는  이런 거라는 표본을 보여주듯

별 것도 아닌 일에 자지러지게 웃고 마는 우리는

트와일라잇 보지 않았다는 친구의 충격고백에 힘입어

우리집에서 파자마 파티를 열기로 한 것이다.

결국 영화를 핑계로 커피 한잔씩과 커다란 베개 하나를 두고

조롱과 애정이 담긴 시덥잖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것도 새벽 다섯시까지!


그럼에도 다음 일정으로 인해 열시에 일어나는 강행군을 펼치고,

하루종일 몽롱한 상태로 깨어있어야 했다.

이게 꿈인지 아닌지 구분하는 일은 아득한 찰나였고

이전에도, 그러니까 아주 어릴 때, 11살 쯤인가.

매일이 이렇게 몽롱했었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 이렇게 꿈같지?”는데…

하루를 꿈인지 아닌지 구분하며 그마저도 달콤하게 여겼던,

놀이터와 엘레베이터 그 중간쯤의 냄새를 달고 살았던 날들이었다.

어쩌면 정신 질환이었나 싶기도  과거를 상하다가

오늘은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하는 꿈을 꾸기로 다짐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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