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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r 14. 2022

미용실은 어려워

7개월 만에 머리 한 사람


오랜만에 들른 미용실에는 3인칭 시점의 내가 앉아 있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칼을 도려내고 볶아내고 박박 비비고 싶어하는 나, 조금 낯설다.

벌써 히피펌을 하겠다는 야심찬 마음을 먹은지 7개월이 흘렀고

이제는 반만 구불거리는 애매한 머리를 전면교체할 마음을 먹은 것이다.

다행히도 주변에는 꽤 다정한 친구의 동생이 일하는 미용실이 있어,

무지하게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줄곧 찾아오곤 했다.


이 친구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륜이 가득 느껴진다.

나는 종종 제 나이보다 성숙한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말끝마다 가벼운 ‘-용’ 체로 방황하는 어린양들을 인도하고 있었다.

몇달에 한번 미용실에 오면 잘 알던 곳이라도 방황하기 마련이다.

적어도 반년에 한번 주기로 이곳을 찾는 나는 그랬다.

관리도 부지런해야 할 수 있고, 부지런히 돈도 있어야 한다.


내 머리를 박박 감겨주는 친구의 손끝이 심상치 않다.

분명 매직약을 잔뜩 묻혀놨던 걸로 기억하는데, 설마 맨손인가?

- 너 장갑 안 꼈어?

- 괜찮아요, 이게 편해요.

- 그러다 손 상해.

무언가 더 부연설명이 있긴 했지만, 도를 넘은 걱정은 삼가기로 했다.

지나친 걱정은 과소평가받는 느낌을 주니까.


그나저나 머리 감는 이 의자, 진짜 편하다.

잔뜩 이완된 몸으로 포스터 한장을 발견했다.

인건비 상승으로 본사에서 커트비를 인상했댔다.

게다가 여성 샴푸는 별도라니.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지만 최저임금 상승이 이렇게 나한테 돌아오는구나.

역시 다 연결된 거였지, 하며 관심의 필요성을 실감한다.

머리를 다 감고 수건이 덮이기까지의 공백은 참 민망하다.


나는 긴 주기로 미용실에 오기까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다소 부산하고 산만한 나의 머리를 고쳐줄 누군가가 있고,

이만하면 나는 예쁘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친구는 어쩐지 말이 없었지만, 나라도 입을 다물 수 있게 해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매직약만 발랐을뿐인데도 애증의 히피가 씻겨져내렸다, 이렇게 쉬운 일을.


혼자 미용실 의자에 앉아 밝기를 최대한으로 낮추고 이것저것 적어내린다.

내 기억력은 언제나 최소한으로 설정되어있으므로 빠른 정리가 필요했다.

 두부같은 아이의 손길에  머리칼은    교체되고, 사라지고 었다.

나는 이곳에서만은 힘없는 고객이요, 철저한 약자였다.

3시간 반의 대장정을 끝으로 홀가분하게 가운을 벗었다.


시간이 좀 지나니까 허리가 너무 아프다.

책도 두 권 가져올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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