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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Sep 05. 2023

정읍 혹은 부안에서

정읍이라는 생소한 도시와 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었다. 미지의 도시, 미지의 사람들, 미지의 생활들. 그러나 이제는 정읍시 옆에 위치한 부안군 줄포면의 우체국이 어디 있는지도 알게 되었고, 맛있는 냉면 겸 칼국수집과 정읍의 유일한 스타벅스도 좋아하게 되었다. 내 남자친구의 본가는 정읍시 옆 부안군이다.


그냥 부안이 아니라 정읍 옆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나도 얼마 전까지 오빠의 고향이 정읍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누군가 오빠에게 본가를 물어볼 때면, 그가 망설임 없이 정읍이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부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 에둘러 표현하는지에 대해.


그는 어차피 생활권은 모두 정읍에 있고, 실제로 도로를 하나 건너면 정읍이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들이 정읍은 조금 알아도 부안은 아예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읍도 생소한 도시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들이 조금은 있다고. 두번 설명하기 귀찮으니까 그냥 정읍이라고 말해버리는 거랬다. 나도 그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내 동네보다 더 큰 동네, 바로 옆에 붙어있거나 혹은 나의 동네를 포괄하는 곳을 앞세우곤 했다. 그 편이 낫기 때문이다. 어차피 우리 동네에 데리고 올 일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 굳이굳이 내 작은 동네를 설명해줄 이유는 없다. 그래서 오빠도 신속하고 편한 쪽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부안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온 지금, 나는 부안에 대해 아주 조금 알게 되었고 꽤 좋아하게 된 것도 같다. 지난 겨울에 아버님이 데려가주셨던 칼국수집이 이 여름엔 냉면집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아주 오래되고 정겨운 곳이라 기억하고 있다. 미닫이로 된 철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을 크게 부르시고, 주문도 하기 전에 사장님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 사장님은 아버님을 형님이라고 부르셨고, 아버님의 사리는 알아서 곱빼기로 챙겨주셨다.


더 신기한 건 대다수의 손님들이 모두 아는 사이라는 것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시는 어떤 아버님은 사장님을 형님이라고 부르곤 하셨다. 진짜 형은 아닌 것 같고, 조폭스러운 형님도 아닌 느낌이었다. 냅다 주방으로 들어가서 떠들썩하게 인사를 하고 나오신 후에야 음식을 주문하셨다. 그 분이 하는 모든 말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는 정도의 사운드였다.


주문을 열심히 하신 후에, 대답이 시원찮다고 생각하셨는지 알아먹었냐~~며 고함을 치셨다. 아마 여기 계신 모든 분이 알아먹으셨을 것이었다. 충청도의 조곤함과는 정반대되는 모습들을 여러번 목격했다. 한번은 정읍 시내를 구경하는 중에 초보운전 딱지 대신 아디다스 스티커가 붙어있는 걸 봤다. 그런데 그 밑에 한글로 큼지막하게 “아재다스”라고 써 있는 게 아닌가…


낮에는 밖에서 그런 생소한 즐거움들을 목격하고, 밤에는 오빠의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다. 곧 나의 가족이 될지도 모를 분들이었다. 아마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었다. 가끔은 오빠를 부르듯 나를 아가라고 불러주시고, 천천히 먹는 나에게 고기라도 하나 더 먹으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었다. 몇 번째 뵙는 거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떨리긴 했다. 아마 오빠도 내 아빠를 만나면 비슷하게 떨려할 테다. 오빠와 아빠 사이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까. 엔터테이너일까, 딸일까, 여자친구일까… 혹은 엄마일까…


그 모든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 만남을 조금 유예하고 싶었다. 아빠를 대하는 나의 마음과 오빠를 대하는 마음이 충돌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일지도. 아무튼 그 만남이 올해 안에 올 것도 같다. 3년이나 만난 남자친구를 꽁꽁 숨겨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내가 조금 더 떳떳해지고 싶기도 해서이다. 아직도 남자친구를 만나러 나간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워서, 친구를 만난다고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데 눈치 보지 않는 딸이 되고 싶다.


아마도 아빠에게 나는 솔직하지 못한 딸인 것 같다. 아빠를 위한다거나 혹은 나를 위해서, 크고 작은 거짓말들을 지니고 산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진실을 밝히지 않는 방법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묵하는 딸일 수도 있겠다. 많은 것들을 감추고 가리다가 혼자 풍파를 맞는다. 그에 비해 오빠는 허심탄회한 집에서 자란 것 같다. 진실과 진심을 밝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두 쪽 모두 어렵지만 오빠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입을 여는 중인 것 같기도…


이번 부안 여행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오빠의 잠결에도 내가 속한다는 사실과 오빠의 모든 닉네임이 내 이름을 변형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된 때다. 보통 오빠가 밤잠이 더 많고 내가 아침잠이 더 많기 때문에, 오빠가 먼저 잠들고 내가 후에 잠들곤 한다. 피곤하지 않을 때의 나는 오빠에게 조금 붙어있다가 툭툭 건드려서 팔을 얻어내기도 한다. 붙어있어야 더 잠이 잘 오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를 갈거나 코를 조금 골던 오빠가 잠에서 깰 듯한 숨을 쉰다. 그러나 아예 깨지는 않고 적당히 고른 숨으로 팔을 내준다. 혹은 내 등을 쓸어준다. 그리곤 금세 다시 이를 간다. 어쩐지 그가 잠결에도 나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음을 깨닫고 나면 편안해진다. 잠결에 속한다는 건 진짜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며 고른 숨을 쉬게 된다. 더 이상 혼자라고 느끼지 않고 잠드는 쪽을 택한다.


닉네임 건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알게 된 것이다. 오빠가 게임 캐릭터 이름으로 승희는 어쩌고, 하는 식으로 저장해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때 친구가 닉네임으로 남의 이름을 해두면 욕도 남의 이름으로 먹을 수 있다는 팁을 알려준 터라 크게 감동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 웃겨하는 식이었는데, 내일 떠날 제주도 숙소를 예약한 ‘여기어때’의 닉네임이 숭숭히인 것이다.


내가 영영 확인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곳에 내 이름이 걸려있다는 게 몹시 기뻤다. 잠결이든 무의식이든, 남의 삶에 지독하게 개입한 느낌이 싫지 않다. 내 무의식에는 어떤 이름들이 떠다니고 있을까. 내가 꿈에서도 찾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도 모르는 무의식의 세계 속에 이미 들어온, 곧 들어올 사람들의 이름이 모두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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