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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Nov 13. 2023

재주넘기를 할 줄은 모르지만

글을 쓰고 싶은 두 사람이 마음을 합했더니 꽤 아름다운 모임이 만들어졌다. 신중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 용기를 낸 덕분이다. (풀네임은 따로 있지만 편의상 그를 말랑님이라고 부르겠다.) 모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용기를 내지 않은 내게 말랑이 물었다. 함께 글을 써보지 않겠냐고! 이토록 설레고 두려운 초대는 처음이다.


약속 장소는 구글 밋. 일과를 마친 금요일 저녁의 얼굴을 마주했다. 주제는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고, 열음이 정했다. 멋진 주제를 생각하던 중에 번뜩 떠오른 것이었다.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지만 둘은 약속이나 한 듯, 만나기 몇 시간 전에 글을 완성했다. 마감이란 게 있기 때문에 게으른 부지런을 떨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 내내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무얼 해야 할지 모르는 채로 일단 모였고… 지난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다. 둘 다 크리스천이라 이런 소그룹 모임에 익숙했다. 나는 면접을 보았고, 말랑은 수업을 들었다. 둘 다 새로운 것들을 쌓아올리는 중이었다. 그러는 중에 어떤 부분은 깎여나가기도 했다. 기존의 것들을 조금씩 깎아내고 새로운 것들을 덧붙이는 게 삶의 매커니즘이 아닐까.


각자 준비해온 글이 있었다. 삶에 대해 말하면서도 서로에게 보여줄 글이 있었으므로 조금 두려웠다. 항상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글을 쓰지만, 내가 직접 읽어주는 글은 느낌이 달랐다… 꼭 읽어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 것 같아서 그러기로 했다. 서로의 글을 읽기도 전에 우리는 앞으로 이 글들을 엮어서 책으로 낼 수도, 팟캐스트를 할 수도 있을 거라며. (썸네일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그리고 우리 모임의 이름인 ‘재주넘기’처럼 진짜 재주넘기를 할 수도 있을 거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서로의 글이 좋을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가능한 호들갑이었다. 나는 언젠가 책을 낼 수도 있겠다는… 비교적 얌전한 상상만을 하고 온 참인데, 말랑은 우리가 재주넘기를 하는 역동적인 모습까지 상상한 것이었다. 그의 작고 얇은 몸으로 재주넘기를 하는 걸 상상하니 너무 웃겼다… 언젠가 말랑이 내 몸에 춤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몸에 춤이 있다는 표현이 신선하게 좋았다. 말랑도 가끔 춤을 춘다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보고 싶다.


나는 면접을 본 이야기를 썼다. 그게 나를 슬프게 하는 줄도 몰랐는데, 쓰다 보니까 조금 슬펐다. 가장 슬펐던 건 면접을 보는 동안, 내가 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웠다는 것이다. 지금껏 내가 써온 글들이 모두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의 글을 부끄러워하는 내가 가장 부끄러웠다. 부끄러움은 슬픔으로 번지기 좋은 감정이라는 걸 처음 느꼈다.


내가 빠른 호흡으로 길고 사실적인 글을 쓰는 동안, 말랑은 (비교적) 느린 호흡으로 짧고 꿈같은 글을 썼다. 그의 글을 이리저리 만지는 동안 어떠한 장면들이 계속 흘러갔다. 그는 이미지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글 속의 바다와 이미 흘러간 슬픔이 연결되는 것 같았다. 당장 슬픈 마음보다 이미 슬펐던 마음, 슬픔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마음에 대한 생각으로 쓴 글이라고 했다. 지난 마음을 기억하는 일은 어렵지만 중요하다.


나는 글을 시작하며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뿐이라는 문장을 썼다. 혹은 살아있는 무엇들까지도. 아무튼 살아있는 것들이 나를 슬프게 할 수 있는데, 그 주범은 역시 스스로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요즘의 기도는 자아에 관한 것이다. 너무 내 안으로만 파고들지 않기 위해, 자아 속에 갇히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나밖에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첫 글모는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글을 읽고 나서 나눌 인사도 정했다. 글을 가져온 사람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받은 사람은 ‘꺼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튼 얼렁뚱땅 시도해본 첫 모임으로 우리는 적당히 소진되었다. 비록 말랑은 나와의 만남이 끝난 후에 다음 모임이 예정되어있다고 했지만… 그래서 그는 더 많이 소진될 테지만…


집 근처의 가장 익숙한 카페에서 이 글을 쓰면서, 새로운 일과 새로운 만남이 얼마나 반가운지에 대해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가 나눌 아름다운 글이 가장 기대된다. 그 글을 어떻게 하게 될지는 무엇도 모르지만, 일단 서로에게 보여줄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한 뼘 더 확장될 것이 분명하다. 글이란 게 꼭 그러니까… 나를 꺼내어 드러내는 일이 부끄러우면서도 개운하다. 그러니까 말랑님, 다음 주제 정하면 알려주세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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