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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Nov 23. 2023

아무튼 새 물결

누구도 파주 출신은 아니지만 파주에서 만났다는 이유로 파주인이라고 불리우는 애들을 만났다. 현재는 부산과 청주와 서울에 살고있는 여자 넷이 파주도 아닌 서울에서, 그러나 파주인의 마음으로 모였다. 어쩐지 사람이 별로 없는 일요일 저녁 상수역에서.


맛있는 밥과 커피보다 더 소중했던 건 우리가 서로를 아끼고 궁금해하며 일단 응원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는 사서가, 누구는 편집자가, 누구는 작가가, 누구는 공연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과거의 일도 아니고 아직 이루어지지도 않았지만 지속되는 마음이기 때문에, 언젠가 서로의 든든한 연줄이 되어줄 수도 있겠다는 짐작이 따라왔다.


경주식당에서 고기 한 상, 이리카페에서 커피와 케잌들, 그리고 제비다방에서 차세대 밴드의 공연을 보았다. 무료 입장이지만 유료 퇴장(자율)인 곳이었다. 아주 자유롭고 즐거워보이는 젊은이들이 제비다방엔 가득했고… 술을 한손에 들고 공연을 즐기러 온 사람들이 많았다. 공연자들도 물론 손에 술을 들고 있었다.


우리는 공연 시작 10분 전에 도착했기 때문에 가장 끝자리에 앉았다. 공연장이 반지하였기 때문에 계단 중간쯤 걸터앉아야 했다. 동시에 그 위치는 밴드와 눈을 맞추며 호흡할 수 있는 자리였다. 찰랑거리는 머리를 규칙적으로 흔들며 드럼을 연주하는 언니… 혹은 오빠를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보자마자 저 언니 미쳤다, 고 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오빠셨다. 즐겁게 섣부른 오해를 했다.


차세대라는 밴드를 이렇게 처음 접한 것이었다. 그들의 공연이 있다고 들었을 때, 차세대가 아니라 새천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느낌으로 계속 생각하다가 실제로 노래를 듣고 보니, 확실히 새천년을 열 만한 기세를 가진 사람들 같았다. 이것은 괜한 오해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서 처음 듣는 노래를 들은 거였지만, 그 열기가 한참 식지 않았다. 공연장에서 나와서도 우리는 술에 취하기라도 한 사람들처럼 조금은 비틀거렸다. 제비다방을 찾아갈 때는 꼿꼿한 직선으로 걸었으나, 거기서 나온 후로는 걸음이 흩날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상수에서의 시간이 무척 충만해서 부족한 게 하나도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현과는 다음날 저녁에 다시 만났다. 우리가 열고 우리가 닫는 글쓰기 모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엔 충무로였고, 그곳엔 주현의 집이 있었다. 충무로 어딘가의 어두운 카페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 주제는 <아무튼, 노래> 였는데 이슬아 작가의 책 제목과 같은 것이었고, 주현이 정했다. 바로 어제, 차세대의 음악을 온몸으로 흡수했기 때문에 분명 그 이야기가 서로의 글에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역시나 우리는 아주 다른 글을 썼다. 분명 차세대가 등장하긴 했는데, 그것말고는 공통점을 찾기 어려울 만큼 달랐다. 한 시간 동안 나는 2,600자의 긴 글을 썼는데 주현의 글은 그 절반 정도 되는 듯했다. 나는 노래라는 게 이렇게나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며 글을 썼고, 주현은 음악의 타임머신적 기능에 대해 썼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차세대를 조명했다.


어쩐지 내가 노래에 대해 쓸 때, 주현은 음악을 쓰는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전체적으로 관조할 줄 알지만 그러면서도 세부적인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도 삶의 면면을 충실히 담아내는 능력이 그에게 있었다. 나는 하나의 이야기를 잡고 그것에 대해 줄줄이 쓰는 편인데, 주현은 역시 어떠한 장면들을 고르게 연결해냈다. 그러나 주현도 자신의 애인보다는 훨씬 긴 글을 쓰는 편이라고 했다. 나에게서 주현으로, 주현에게서 주현의 애인에게로 점점 함축되는 글과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역시 글이란 건 정말 상대적인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주현은 글 밖에서도 아는 게 참 많은 사람이었다. 그가 전해주는 책이나 글이나 사람이나 이야기들이 무척 새롭고 내게 꼭 맞았다. 어떤 책방 겸 술집에서 (양해를 구하고…) 뜨거운 차와 커피를 마시며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언젠가 표지가 아주 빨갛고 강렬한 책이 있어서 보게 되었다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소설가인 폴이 예술가인 소피에게, 뉴욕에서 아름답게 살아갈 방식 4가지를 제안한다. 그것은 “타인에게 미소 짓기, 대화하기, 걸인과 노숙자 배려하기(샌드위치 건네기), 공공 장소 하나를 정해 나의 일부인 것처럼 가꾸기” 였다. 이 조언들을 착실히 수행하는 소피는, 동시에 관찰일기를 써내려간다.


이를 테면 몇 번의 미소를 건넸고, 다시 몇 번의 미소를 받았는지. 샌드위치를 건네며 어떤 사람들을 마주했는지. 그런 이야기를 담은 책이라고 한다. 차세대를 알려주고 짧은 글의 아름다움을 보게 할 뿐만 아니라, 아예 새로운 책 이야기를 해주는 주현이 너무 옹골차고 대단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이야기를 가지고 온라인 레터를 발행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마침! 브런치 프로젝트 결과가 나오기까지 딱 한 달이 남았는데,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가장 알차고 후회 없이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던 차였다. 좋은 사람에게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왔으니, 이제 움직일 차례가 된 것이었다. 나는 이제 좋은 홍보를 한 후에 좋은 글을 쓰기만 하면 된다. 내가 누군가의 소피가 되어 글을 쓰는 것이다.

(제목도 주현에게 들은 이야기에서 나왔다…)

바다 사람인 주현이 흘려보내는 물결에 대해 생각한다. 그 물결을 따라 나는 이러한 글도 써보게 되었다. 그가 가진 파도와 깊이와 짠 맛이 모두 나를 새롭게 한다. 다시 생각하게 하고, 더 생각하게 하고, 그래서 쓰게도 하는 것이다. 역시 파주인은 아니지만 지금은 서울에 살고, 원래는 속초에 살던 주현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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