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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Nov 27. 2023

온몸에 머리카락이 가득해!

아침에 머리를 말릴 때마다 생각한다. 빨리 이 히피를 풀어버리고 싶다… 이제는 히피라고 하기도 민망한, 그러나 그냥 파마라고 하기엔 아주 꼬불거리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말이다. 마지막으로 미용실에 다녀온 건 유럽 여행을 떠나기 직전, 그러니까 3월이었다.


유럽에서 3개월 간 석회수에 씻겨진 나으 머리칼… 너무 긴 데다가 무려 히피펌이라서 빗을 엄두도 나지 않는다. 얼마 간 머리를 빗지 않으니 곳곳이 엉키고 뭉치기 시작했다. 엉켜서 뭉친 머리는 아무리 힘을 써도 풀리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아주 젠틀하게 살살 만져가며 풀어줘야 한다. 요즘은 아침마다 뭉친 부분들을 빗어내는 데 힘을 쓰고 있다. 어째서 머리카락은 딱히 몸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까. 곧 잘려 나갈 거라서, 새롭게 자라는 것들은 따로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당장 미용실을 가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긴 머리를 단장하려면 최소 10만원은 들 것이다. 자린고비형 백수에게는 넘볼 수 없는 금액이고… (우선순위에서 항상 밀려남) 그래서 어느 날은 단발로 확- 잘라버릴까도 고민했다. 그러나 이내 가성비를 위해 머리를 자른다면 당장은 후련하겠지만, 잘 길러지지 않는 머리를 보며 슬퍼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포기했다. 아직은 긴머리로 해보고 싶은 일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단발로 살아온 기억이 정말 없다. 딱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중학교에 들어갈 때 두발규정 때문에 잘랐던 일이다. 그 때는 모두가 초코송이 같은 머리를 함으로써… 개성보다는 일체성을 요구받았다. 머리 길이가 어깨를 넘어서면 선도부 언니들이 와서 경고하던 시절이었다. (불과 10년전이다) 타의에 의한 단발은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후로는 쭉 머리를 길렀던 것 같다.


두 번째는 고등학생 때 충동적으로 잘랐던 단발. 당시에는 과감하게 S컬로 머리를 말기까지 했었다. 물론 하자마자 가장 무서운 선생님한테 걸려서 벌벌 떨었던 기억이 있지만… 아무튼 단발로 자르고 얻었던 별명은 산체스였다. 매일 아침마다 퀭한 얼굴로 학교 계단을 올라오면… 애들이 나를 산체스라고 불렀다. 누런 얼굴에 화장기는 없고 광기만 있던 탓이다. 가장 날 것의 시절이었고… 뭐든 웃기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는 개그적 마인드를 가지고 살던 때였다. 그만큼 가벼운 날들이었다.


그 외에는 모두 긴 머리로, 가르마는 보통 5:5 에서 4:6 정도를 왔다갔다 했다. 좀 과감하게 연출하고 싶으면 4:6을 사용했고 그 외에는 자연스럽게 5:5로 내버려두었다. 이마가 좁아서 앞머리를 내릴 수 없는 형국이지만, 어차피 앞머리를 내려도 오랫 동안 반으로 갈라져있을 것이다. 머리에도 관성이란 게 있는 법이니까… 언젠가 내가 풀뱅에 단발을 하는 날이 있다면 무언가 아주 큰 결단을 한 것일 테다.


다음달 알바비를 받으면 가장 먼저 미용실에 갈 것이다. 어디서 누구에게 받을지도 이미 정해두었다. 가슴 위까지 자른 후에 볼륨매직 혹은 C컬을 때리려고 한다. 새로운 시도는 아니지만, 긴 머리일 때 엉키지 않고 가장 무난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제대로 히피펌을 다시 해볼까, 도 생각했는데 이제는 머리를 빗고 싶기 때문에 포기다. 우아하고 가지런한 모습으로 재탄생하고 싶다.


요즘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간지러운 구석들이 있다. 이를 테면 등이나 가슴, 엉덩이 쪽이다. 그럴 때면 손을 쑥 넣었다가 무언가를 쥐고 뺀다. 간지러운 지점을 정확히 알아야만 가능한 움직임이다. 손을 빼고 보면 아주 길고 구불거리는 머리카락이 달려 있다. 옷을 갈아입을 때 들어간 탓이다. 이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길어서 한 가닥만 붙어도 간지러움을 참을 수가 없다… 주로 알바할 때 느닷없이 간지러워서 손을 넣어보면 머리카락이 잡힌다. 어제는 잠들려는 찰나에 엉덩이에서 머리카락이 나온 게 아닌가…


그래서 오늘은 나의 ‘머리 하고 싶음’에 대해 쓰기로 결심했다. 그런 키워드가 메모장에 그득하다. 나의 ‘머리 하고 싶음’은 곧 ‘돈 없음’과 직결되는데, 여행 이후로 두 마음을 계속 유지했다. 그래도 너무 중요한 구석에 써야 할 돈이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언젠가 제대로 일을 하게 된다면 그 여행의 기억을 자주 되짚어볼 테니까. 그리고 그 때는 이미 정돈된 머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다 풀린 히피라도 지금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어째서인지 잘 죽지도 않는 히피펌. 근래는 파마를 다시 했냐는 오해를 받을 만큼 탱글하게 남아있다. 머리칼이 얇고 잘 상하는 대신 파마도 오래가는 것 같다. 내가 히피(올해 3월~11월)인 동안에는 모험과 도전과 불안과 시기와 회복과 재기가 그득했다. 써보지 않았던 글을 쓰고, 만난 적 없던 사람들을 만나고, 가본 적 없던 곳을 가고, 새로운 형태의 글도 쓰고, 면접도 보며 지냈다. 잔잔하고 지겨운 히피처럼 얇고 길게… 글이나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장수거북이 같은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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