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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r 25. 2022

내게 술이란 당신들의 권력


나는 술을 먹지 않는다.

잘 먹는 것도, 못 먹는 것도 아니고 안 먹는다.

술에 내 결정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기 때문,

그리고 나를 지켜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랄까.


무능한 주량을 가진 아빠의 영향으로 우리집은 술과 단절된 삶을 살아왔고,

대학교에 들어가고부터 나와 술의 역사는 시작되었다.

내 동기들은 술을 정말 잘 먹는다, 술에 환장하기도 하고.

만약 그들이 술과 데이트를 했다면 한 달만에 권태기가 올 것이다.

하필 또 술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친해질 게 뭐람.

여하튼 스무살 이후로 술에 대한 원망과 가져보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를 품고 살았다.

분위기에 못 어울리는 사람 취급받는 거, 엔프제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딱 술 하나, 나의 인싸력에 브레이크를 거는 건 그거 하나였다.

가끔은 춤까지 추며 술 먹는 사람들에게 넌더리가 나고,

2차, 3차씩이나 하는 사람들의 영혼 없는 열정에서 도망쳐오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술 안 먹는 사람으로 산다는 건 음주가무라는 거대한 역사에 대한 반항이니까.


가끔은 내가 술을 먹지 않는 별종이라 하여

어딘가 부족하거나 아픈 사람인 양 취급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내가 글을 쓰고 네가 글을 쓰지 않는다고 너를 나무라지 않을 텐데.

내가 떡볶이를 좋아하고 네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너를 탓하지 않을 텐데.

(나에게는 술이 딱 이 정도 취급이다.)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다.

다들 누리고 사는 거 왜 유별나게 구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에게는 당연한 일이 다른 이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

어디에서도 다수의 위치에 놓여있던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일종의 권력이라도 잡은 것마냥 소수를 하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편의 쪽에 섰다고 해서 모두가 옳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무 잘못도 없이 무언가 어긋나보이는 사람,

취약한 사람으로 여김받는 것은 상당히 불쾌하다.

술을 먹는 몇몇 사람들을 사랑하긴 하지만,

욕 아닌 욕을 먹으면서도 마냥 웃기만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여하튼 지금껏 술은 내게 일종의 권력이었고, 그 권력에 굴복했음을 인정한다.

함께 즐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축되고, 술이 주가 되는 자리는 슬슬 피하기도 했다.

종래는 술을 안주로 삼는 이들을 피하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나의 의지로 지금껏  권력을 인정하고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왔지만

이제는 그 반대의 길을 걷고자 함이다.

너에게는 권력일지 모르는 그 힘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만한 신념이 있으니,

충분히 반항하고 쉽게 꺾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윽고 너에게는 어떤 신념이 있는지 물어볼 테다.

당신에게는 대세를 거스를 만큼 귀중한 신념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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