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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r 22. 2022

너랑 싸운 후에는 …

과자를 왕창 먹고 싶어져


연인과 싸운 밤에는 아무것도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머릿속의 복잡한 수를 다 읽혀서일까.

나조차도 무슨 생각이 들어섰다 나가는지 살필 겨를이 없다.

그와 다툰 날이면 꼭 짭짤한 간식이 땡긴다.

눈물을 한바탕 쏟아내서 그런가…

어제는 쌀 새우깡이 타겟이었는데, 세 입 먹을 분량밖에 없어서 서러웠다.

싸움은 늘 사랑으로 시작한 치사함에서 비롯된다.

그 다툼으로 확실해진 것은 내게 옹졸한 구석이 아주 많다는 점,

생산적인 삶을 살아갈 힘이 건강한 연인 관계에서 나오고 있었다는 점,

나는 야식을 먹고 바로 눕거나 하는 파괴적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점이다.

감정의 소용돌이 앞에서 꼼짝않고 누워있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결국 순수한 사랑으로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영화 <오만과 편견>을 틀었고,

연달아 <레터스 투 줄리엣>을 시청하며 죄책감만 늘었다.

‘내가 왜 누워서 이걸 보고 있지?…’ 하는.

평소라면 자격증을 공부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했을 텐데.

다만 어제만은 그럴 용기가 없었는데,

어쩌면 평소에는 당연하고 그득했던 그 열정을 외면한 것이다.

나는 그와의 불편하고 상처스러웠던 말들을 곱씹고, 되돌려보고, 생각해본다.

침대에 누운 상태에서는 그러한 생각들이 쉽게 몰려오기 마련이다.

내가 힘들게 했던 기억보다 상대의 잘못이 더 크게 다가오는 불공평함을 원망하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피어오르는 애틋함이 당황스럽기만하다.

나는 그렇게 편견이 가득한 채로, 잔뜩 불편해진 사랑을 마음에 두고

과자를 전혀 소화시키지 않은 채로 잠에 들고

다음날이면 그에게 일어났다는 카톡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안도한다.

그리고 다짐한다.

나는 정말로 그를 떠날 수 없겠다고, 어쩌면 영원히 구속될지도 모르겠다고.

이 속박이 나에겐 그저 달콤할 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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