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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Dec 06. 2023

두 번째 재주넘기

아무튼, 노래


일어나자마자 삶이란 참 귀찮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그걸 입밖으로 내뱉어버렸다. 오늘은 친구들과 함께 자고 또 일어난 날이었는데… 아무리 오랜 친구들과 함께 있어도 어느 정도 정제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를 테면 하루를 겸허히, 그리고 충만하게 살아가는 모습 같은 것들.


어젯밤에는 아주 격렬한 노래를 들었다. 무척 열정적인 젊은이들의 무대를 지켜보고 온 터라, 느리고 단조로운 나의 삶이 조금은 하찮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어제 바라본 그 사람들은 차세대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게도 음악에 미친 것처럼 보였다. 진짜 미쳤든 미치지 않았든 멀리서도 저들이 음악가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당당하게 미친 듯한 몸짓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차세대라고 말해야 하는데 몇 번이나 헷갈려서 새천년이라고 부를 뻔했다. 새천년이라는 말은 2000년이 올 때 쓰였던 것일까…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마음은 얼마나 거대할지. 아무튼 새천년은 아닌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자 제비다방을 찾았다. 유럽을 여행할 때 마주했던 것처럼 자유로운 분위기가 그곳을 지배했다. 좁은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 술을 마시면서도 기운을 잃지 않는 사람들, ‘돈도 없고 좆도 없지만(제비다방 표어)’ 일단은 모여 있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공연은 제비다방 아래 반지하에서 진행되었고… 우리는 공연 시작 10분 전에 급히 달려온 터라 가장 끝자리이자 가장 윗자리에 걸터앉았다. 그곳은 계단이었고, 그래서 엉덩이가 아팠지만 차세대와 눈이 맞닿는 자리였다. 사람들은 적절히 리듬을 타면서 음악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가능한 자연스럽게 고개를 까딱이면서 이 자리를 충분히 즐기고 있음을 표현해보았다.


1시간 정도, 줄곧 음악을 들었다. 기타와 피아노와 하모니카를 오가는 누군가의 빵빵한 재능을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급격한 파동이 치는 음악이었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예술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그들이 내고 싶은 소리에 말이 따라붙는 것 같았달까. 음악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좋은 느낌에 대해서는 알았다. 제비다방 끝자리에서 비슷한 걸 느꼈다.


많은 것에 무지하고 불확실한 와중에도 하나 확실한 것은, 내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귀찮다고 말하는 사람인 동시에 쉬지도 않고 콧노래를 부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머릿속을 떠다니는 어떠한 음들을 코로 뱉어내고 있었다. 가사 없는 노래는 언제든 가사 있는 노래로 변주될 수 있고… 나는 주일마다 마이크를 들고 찬양을 부르는 사람이며, 항상 듣고 싶은 노래들이 있었던 것 같다.


노래란 게 이만큼 가까이에 있었나. 반복해서 듣고 부르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음악은 참 깊은 것 같다. 반복할수록 의미가 더해진다는 점에서도. 내가 요즘 가장 반복해서 듣는 음악은… 스텔라장의 <L'Amour, Les Baguettes, Paris>이며, 불어로 된 노래라 무슨 뜻인지 쥐뿔도 모르지만 프랑스에 대한 기억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에 애청한다. 아무튼 스텔라 씨가 파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짐작하면서 듣는다.


생각해보니 요즘은 에어팟을 잘 끼지 않는다. 이동하면서 노래를 잘 듣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게까지 멀리 이동할 일도 없을 뿐더러, 그런 와중에 음악을 들어버리면 각을 잡고 생각할 틈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도 헤드셋을 잘 쓰지 않는다. 노트북 케이스에 헤드셋이 잘 안 들어가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소음 중에 글을 쓰는 데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딱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아서 내버려둔다. (가방도 무척 가벼워졌다.)


말랑을 만나러오는 길에도 노래를 듣지 않았다. 단지 생각을 했다. 오랜만에 꺼낸 패딩 주머니에 잡히는 키세스 초콜릿, 각 잡힌 슬랙스에 잔뜩 묻어있는 흰 자국에 대해서. 벌써 패딩을 꺼내 입은 지 2주가 지났고, 주머니에 오래 된 초콜릿이 있다는 걸 안 지도 2주나 되었는데 아직도 버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두꺼운 슬랙스에는 지난 겨울에 스타벅스에서 일할 때 튀었던 우유 자국이 남아있다는 것에 대해서. 그 모든 걸 몸에 두르고 혹은 지니고 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새천년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차세대인 사람들의 노래를 듣고 그들의 과격한 표현에 조금은 반해버렸고, 귀찮은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지만 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작년 겨울에 입던 걸 제대로 돌보지 않은 채로 이번 겨울에도 입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나 허술하고 양면적인 사람이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브런치 프로젝트가 마감된 지 꼭 한 달이 지났고, 브런치 프로젝트 결과가 나오기까지 꼭 한 달이 남았다. 그러니까 지금은 정확히 중간 지점에 서있다는 것이다. 올해를 기준으로 봤을 때는 마무리만 남겨둔 것 같지만, 가장 신경 쓰이는 무엇 앞에서 나는 아직 한가운데 서 있다. 어딘가의 사이에 놓여 있다는 기분이 꼭 잘 싸여진 샌드위치가 된 것 같아서 나쁘지 않다.


그런 와중에도 캐롤은 들릴 것이고, 그러면 브런치 프로젝트보다는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더 설레할지도 모른다. 일단은 불안하고 두려운 것보다 설레는 편이 낫지 않나. 스텔라장의 불어 노래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지만 당장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처럼. 감정만이 남는 일은 흐릿하고 그래서 망설여지지만 어쨌든 나를 움직이는 건 그런 감정들이기 때문이다. 감정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2023.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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