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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y 09. 2022

비커밍 제인의 오만과 편견

스포 O


스무 살 무렵 처음으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보았다. 외국 문학에 대해 쥐뿔도 모르던 내가, 단지 직감만으로 그 책을 고른 것은 운명적인 일이다. 추상적인 제목이 마음에 들었고, 사랑 이야기인 줄은 예상도 할 수 없었으며,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만 보면 마음이 설레던 탓이다. <오만과 편견>은 19세기 영국 사회의 결혼 제도 속에 타오르는 사랑과 협상, 절충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은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생각해보니 스무 살이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에 이 책을 봤나보다. 교실에서 다아시~ 하며 애절하게 외치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좋아하는 남자나 배우나 캐릭터가 생기면 교실이든 복도든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이름을 절절하게 외치며 부끄러움과 통쾌함을 동시에 얻곤 했다. 물론 부끄러움은 친구들의 몫이기도 했지만 그런 것마저 공평하게 나눠 갖는 게 우정이 아닐까.


영화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을 집필한 제인 오스틴의 생애를 담은 영화가 바로 <비커밍 제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영화 <오만과 편견>의 여자 주인공인 키이라 나이틀리와 <비커밍 제인>의 앤 해서웨이를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같은 인물이 소설 속 주인공과 실제 작가를 연기한 것이라고 착각하며 흥미롭게 영화를 관전했는데…. 그만큼이나 제인 오스틴의 생애가 엘리자베스의 삶과 비슷한 것일 테다.


실제로 제인은 사랑에 실패했다. 오만과 편견처럼 모든 걸 누리는 파격적인 사랑의 주인공인 줄 알았건만. 그 시대 영국 사회에서 여자 혼자 글을 쓰며 돈을 벌어먹고 산다는 것은 손가락질 받을 일이었다고 한다. 제인은 몇번이고 엇갈리는 사랑을 앞에 두고, 가족이라는 현실과 작가라는 꿈을 조건으로 타협하기로 한다. 그 외로운 선택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만큼 자라난 마음으로 책을 썼을 걸 생각하면 질투가 나기도 한다.


영화 <비커밍 제인>

확실히 사랑은 우리를 쥐락펴락하는 존재다. 사랑은 기쁨만 주지 않고 반드시 아픔을 곁들인다. 동시에 영혼은 끝도 없이 뿌리를 내리고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이 오르게 한다. 누군가를 이만큼 그리워할 수 있고, 이만큼 미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제인에게 사랑은 손에 쥘 수 없는 것이었지만, 엘리자베스에게 사랑은 온몸에 느껴지는 것이었다. 자신이 가질 수 없었던 삶을, 사랑과 저택을 엘리자베스는 갖는다.


비커밍 제인은 항상 찜한 영화 목록에 속해 있었다. 이것 말고도 제인 에어, 안나 카레니나, 천일의 스캔들, 작은 아씨들 등등이 있다. 아직 보지는 않았지만 왠지 벌써 본 것 같은 친숙함이 드는 영화들이다. 이러한 영화 속 주인공들은 늘 내게 사랑의 위대함에 대해 말해주고, 실패의 가능성을 몸소 보여주기도 한다. 사랑에 대해 용기를 얻고 싶을 때면 이런 영화들을 본다. 그러면 그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유약한 나를 붙들고 사랑이 모두의 고민이 될 수 있음을 속삭인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아마  영화들을 찜한 목록에서 삭제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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