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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Apr 12. 2022

죽을 때까지 다이어트하긴 싫은데

2편


가끔은 거울을 가만히 쳐다보기 어려울 때가 있다. 눈에 띄게 두꺼워진 내 턱살이나 왠지 작아진 듯한 눈을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56키로에서 6키로를 감량하고 50키로가 됐다. 사실 나도 내가 다이어트를 성공할 줄 몰랐고, 내 주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듯하다. 나는 말로만 다이어트를 다짐하는 이른바 아가리어터였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일순간에 변한 것은 별 이유도 아니다. 왠지 이번에는 꼭 성공하고 싶었기 때문.


어렸을 때부터 먹는 데서 간편한 행복을 찾았던 나는, 먹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음식에 집착했다. 그 집착이 과한 날에는 배가 불러도 음식을 남길 수 없다는 일념으로 겨우 다 먹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저녁을 먹으면서 다음날 점심을 고민하는 보편적인 사람이 되었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먹는 행위에서 행복을 찾는 것 같다. 아마 하루에 2번 내지 3번 정도 이 행위를 지속해야 한다면, 이왕이면 좋은 것으로 채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또는 보이지 않는 행복을 찾기가 어려워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채워넣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행복의 비중에 음식이 1순위인 사람이었고, 1편에서 말했던 것처럼 ‘예쁜 여자는 마른 여자’라는 사회의 인식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라났다. 비록 음식에 비해 형편없는 맛이었지만. 이런 내가 다이어트를 해야겠다는 반복적이고 일상적인 결심을 한 뒤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내 주변에는 운동을 좋아하는 남자친구가 있었기에 더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인체의 신비에 대한 열띤 토론 끝에 운동으로 열량을 태우는 것보다 식단을 조절하는 게 훨씬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약 3개월 동안 뼈아픈 건강식을 섭취하며 조금씩 곤고해지는 마음을 간신히 부여잡고 살았다.


그렇게 항상 불러있던 배가 수직이 되어갈 때 쯤, 나는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다. 내가 나를 관리한다는 것이 이렇게 뿌듯한 일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자기관리와는 거리를 유지하며 마인드만 건강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몸이 건강하니까 행복이 배가 되는 것 같았다. 생전 처음 식단관리라는 걸 하고 나니 몸도 놀란 듯했다. 3개월 후에는 보름달 같고 통통했던 볼살이 쫙 빠져 반쪽이 되었다. 무심결에 찍힌 사진에도 갸름한 턱일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며 말이다.


이 다이어트를 하는 동안에도 무자비한 편견과 질문들을 종종 먹곤 했다. 특히 다이어트를 왜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겐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난감했다. 우선 그들은 ‘다이어트를 왜 해~ 살 안 빼도 예쁜데~’가 아니라 ‘다이어트를 왜 하게 된 거야?’ 하는 식의 질문을 해서 나를 곤란하게 했다. 그럴 때면 ‘하고 싶어서요’라고 대답했는데, 그럼 그들은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무슨 대답을 원했던 건지 알 것 같은데 제대로 알고 싶진 않다. 또 한번은 누가 다이어트를 하라는 압박을 주었냐는 질문도 받았는데, 남자친구를 염두에 두고 한 말 같았다. 내 다이어트가 남자친구와 무슨 연관성을 갖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이렇게 뺀 살이 다시 내게 돌아왔다. 약 3키로 정도? 별 것도 아니긴 하지만 6개월동안 유지했던 몸이 서서히 불어나는 걸 보는 게 쉽지만은 않다. 머지 않아 다시 다이어트의 길에 들어설 것이라는 예감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잘 먹는 내 모습도 좋지만 나를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건 기쁜 일이다. 동물적인 본능에만 이끌려 살 게 아니라, 삶을 적절히 진두지휘하는 느낌이니까.


하지만 살이 다시 고개를 내민 이후로 이전처럼 거울을 보진 못했다. 거울 속 나를 박제해두고 자랑하듯 몇번이고 훔쳐보았던 내가, 지금은 결이 진 턱살을 만져보며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있다. 사진이라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더 갸름하게 나올지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봤다. 살짝 아래쪽 각도에서 거울을 볼 때면 절로 한숨이 나오곤 했다. 비록 이전보다 피부도 좋아졌고 혈색도 좋아졌지만 이미 놓친 것에 집중하느라 다른 좋은 것들은 칭찬할 때를 미뤄두고 싶었던 듯하다.


이럴 때일수록 나는 거울을 똑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몇 키로에 좌지우지되는 사람이 아니라 점점 또렷해지는 이목구비를 뜯어볼 줄 알아야 한다. 오동통한 팔과 뱃살을 흔들어볼 게 아니라 더 건강한 나를 위해 운동을 지속해야 한다. 그렇게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다이어트를 해야 할 것이다. 다이어트에 성공했을 때가 자존감이 가장 안정적인 때였다. 그건 좀 슬픈 일이긴 하지만 내게는 그만한 성취였고, 평생 실패로 얼룩진 다이어트에 펀치를 먹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영광을 뒤로 하고 이제는 내 몸을 진짜로 사랑할 때가 온 것 같다. 홀쭉해서 사랑할 게 아니라 나이기 때문에 사랑할 것. 통통하지만 귀여운 나의 팔을 자주 쓰다듬을 것. 먼저 나를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바라봐줄 것. 맹목적인 다이어트와 그로 인한 자괴감이 얼마나 괴로운지 알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나를 사랑하는 다이어트를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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