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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Apr 10. 2022

간편한 잠

드디어 하늘색 밤이 왔다. 저녁 7시가 되어도 어두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밤이 늦어지는 여름이 오고 있다는 표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밤을 무서워했다. 저녁 7시가 넘으면 저녁을 먹어야 했고 그러고 나면 티비를 보다가 잠을 자야 했다. 그 때부터도 치밀하게 계획적이었던 나는 웬만하면 내가 정한 흐름대로 시간이 흘러가게 두었다. 하다 못해 씻을 때도 나만의 순서를 정해놓고 벗어나지 않는 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내가 밤이 무서웠던 이유는 딱 하나, 잠이 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나는 일종의 불면증에 시달렸다. 여기서 일종이라 함은 그게 질병이긴 했는지 아직도 긴가민가해서다. 매일 잠에 들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새벽이 되도록 잠과 현실의 경계를 들락거리며 티비가 밤새 켜져있기를 바랐다. 나 말고도 잠들지 못한 사람들을 티비 속에 가둬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이 안 올 것 같으면 그 사람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용기를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와 아빠와 남동생은 거실에서 다같이 이불을 펴고 잤던 것 같은데, 그 때 우리집은 엄마가 사라진 지 막 3년도 안 되었던 시점이고, 남동생은 잠을 무서워하기엔 영락 없이 어렸다. 결국 내가 기댈 곳은 아빠밖에 없었는데 아빠는 나의 불면증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는 억지로 자려고 하지 말라며, 편안하게 티비를 보다가 자고 싶을 때 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자고 싶은 때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나는 밤을 무서워했고 잠은 두려워했다. 사실 어둠이 무섭다기보단 밤에 잠을 자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항상 웅얼거리는 티비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퍼지던 우리집 거실이 이상하리만큼 크게 느껴졌다. 우리 셋이 살기엔 너무 큰 집이 아닐까 항상 생각했다. 약 몇 달간의 외로운 사투 끝에 잠을 두려워하지는 않게 됐지만, 아직도 친구네 집이나 여행에 가서 혼자 잠을 자야하는 상황이 오면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가 있다. 내 옆에서 편안한 얼굴로 자고 있는 친구들을 격하게 흔들어 깨우고 싶었다.


이런 나와 달리 남자친구는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이다. 특히 여행을 가서는 장거리 운전으로 인해 더 피곤할 테고, 그럴 때면 난 그를 재울 수밖에 없다. 내가 운전을 하긴 어려우니까 잠이라도 양보해야 한다. 사실 오빠는 언제고 잘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 점이 가끔은 단순하게 부럽다. 항상 졸립기도 하지만 언제든 잠에 들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니까. 그는 잠에 대해서는 프리패스권을 발급받은 사람이었다. 나 역시 별 생각 없이 무탈하게 잠에 들었다 깰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잠에 대해서도 정해진 규칙이 있다. 살면서 대충 정해진 거지만 말이다. 낮잠은 자지 않을 것, 밤 12시가 넘어서 잘 것, 아침 10시 전에는 일어날 것. 비대면 시대의 대학생으로 살다 보니 다들 조금씩은 게을러지기 마련이다. 내가 요즘 대학생으로서 10시 전에 일어난다고 하면, 일찍 일어난다고 할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안다. 잠에 들기 위해서는 잡생각을 많이 해서도 안 된다. 직전에 커피를 먹어서도 안 된다. 조금이라도 불면증에 가까워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잠이 와주지 않는 게 얼마나 애석한 일인지. 그렇게 불러도 안 오던 잠이 알 수 없는 타이밍에 쏟아져내린다는 게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내가 아는 한 잘 먹고, 잘 쉬고, 잘 자는 게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일단 첫 번째는 확실하게 처리하고 있는데, 두 번째랑 세 번째는 자신이 없다. 나는 애초에 가만히 쉬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방학 동안 아무 계획 없이 쉬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한 번 잠에 들면 세상 모르고 잔다는 점은 축복이다. 벨소리를 최대로 한 알람을 베개 옆에 맞춰두고도, 옆방에 있는 친구보다 늦게 듣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번은 우리집에서 자던 친구들이 내 머리맡에 있는 알람을 끄러 스무 발자국 정도를 걸어온 적도 있다.


나와 잠의 이야기는 정말이지 복잡하다. 유년시절을 힘들게 했지만 지금은 조금 쉬워졌고, 가끔은 골탕을 먹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잠을 자는 순간만큼은 다른 세상의 사람이 된 듯하다. 비록 어제는 친한 친구에게 욕을 먹고 싸우는 꿈을 꾸느라 피로했지만 말이다. 지금은 렌즈 때문인지 하루의 노곤함 때문인지 벌써부터 눈이 무겁다. 오늘만큼은 간편한 잠을 잘 수 있기를 바라며, 그 잠을 위해 나는 공부를 하러 갈 것이다. 간밤의 잠이 하루를 결정하지만 그 하루가 간밤의 잠을 결정하기도 한다. 오늘은 안전한 잠을 불러들이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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