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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Apr 02. 2022

내겐 너무 단순한 남자친구


내 남자친구의 단순함과 단순한 잠에 대해 생각한다. 어찌 보면 우리는 교회에서, 아니 세상에서 제일 단순한 사람과 복잡한 사람이 만난 걸지도 모른다. 나는 무슨 일이든 복잡하고 길게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오빠는 언제고 단순명료한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러한 능력을 동경하고 사실 매우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대개 단순함이라는 미덕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게다가 오빠는 고민이라면 하루에 하나쯤이 적당한 사람이라, 잠도 무지하게  자고 많이 잔다. 연애 초반에 우리를 괴롭혔던 싸움의 주제는 대체로 수면이었다.  당시 오빠는 항상 잠에 취해 있는 사람 같았다. 나는 그런 모습이 낯설었고 그래서 자주 화를 냈다. 생각해보니 오빠는 그저 잠을 자고 싶었을 뿐이다. 우리는 비슷한  전혀 달랐고, 그게 서로에게  매력이었다.


그리고 오빠는 기분 좋게 솔직한 사람이기도 하다. 좋고 싫음을 반감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좋고 싫음을 말할 때 자주 반감이 묻어나곤 한다. 그래서 오빠에게 그런 말을 잘하는 법을 배우기도 한다. 내가 좋고 싫다고 해서 미안할 것도 고마울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그에게 빚지지 않았고 그도 내게 빚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빠는 언제 입을 열고 언제 닫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비록 가끔은 내 선을 무자비하게 밟고 넘어설 때도 있지만, 그로 인해 서로의 선을 자주 들락거리는 것이 연애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실 생각이 많고 복잡하다고 해서 꼭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오빠가 단순하다고 해서 얕은 것도 아니다. 가끔은 내가 오랫동안 묵혀둔 말이 뱉고 보니 너무 냉소적이어서 놀랄 때도 있다. 의도와는 달리 아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말들이 있다. 게다가 친구들과 있는 즐거운 순간에도 나만의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무슨 고민이 있는지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알아봐주는 친구도 있지만, 모든 걸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고단하고 피곤한 생각의 늪에 빠져있을 때가 많다. 나의 생각은 주로 나의 책임에 대한 것, 그로 인한 죄책감, 만나야 할 사람에 대한 것, 그로 인한 피곤함 정도다. 그러니 입에 담기도 하찮은 생각들을 입안에 잔뜩 머금고 있는 셈이다.


한번쯤은 아무 생각도 없이 가만히 앉아 멍을 때려보고 싶다. 큰 노력 없이 그게 가능한 사람이라면 당신은 천운을 가진 것이다. 오빠는 그곳이 어디든 머리만 대면 잠이 들고, 무언가 물으면 자주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이 단순한 사람을 오밀조밀 뜯어보고 더 파헤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와 함께하는 순간에 더 바랄 것도 포기할 것도 없는 요즘이다. 오빠랑 있을 때면 내 세상도 한 겹쯤은 벗겨지는 것 같다.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자거나 게임하거나 운동하고 있을 그의 존재가 나를 가볍게 만들곤 한다. 복잡했던 생각의 족쇄를 풀어버리는 그가 갈수록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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