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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Apr 01. 2022

첫 충치를 발견한 날


24년간 충치 하나 없었던 내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하나는 충치가 생기다 못해 작은 구멍이 뚫려있고 하나는 무언가 금속으로 때워야한다는 사실.

어쩜 감쪽같이 나를 속이며 썩어져 왔는지.

상처가 곪는다는 게 이렇게 고요한 일인가.


이쯤 되니 치료 비용을 억울해하던 친구에게 무감각했던 일이 미안해졌다.

철면피가 아니라 직접 겪지 않은 탓이었다고 해두고 싶다.

다만 그 돈으로 무얼 할 수 있는지 상상은 해보았다.

억울한 지출은 늘 우리를 곤란하게 하는 법이다.


막상 몇 년만에 치과에 가보니 공포라는 개념을 공간화한 것 같았다.

심리학과 친구가 경고해주었던 아찔한 치과의 소음이

입 안을 공격하고 있을 때 나는 처량하게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그것이 얼마 만에 겪는 순수하고 육체적인 두려움인지.

어른이 되는 일은 무척이나 피곤하고 두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참으면 참을 만하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그보다 더한 고통이 도사렸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은 미숙한 사회인인 나는, 욕 아닌 욕을 연거푸 곱씹으며 격동의 시간을 견뎌냈다.


고작 사랑니 좀 확인하러 간 치과였는데, 웬걸.

충치만큼 습하고 어두운 곳에서 고요히 썩고 있던

음흉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때울 차례가 와버린 것이다.

이윽고 나의 고통에 무감각해보이던 의사 선생님의 불행한 목소리가

치료의 소음만큼이나 애석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오늘은 어지간히 집중이 안 되는 날이기도 하다.

항상 부여잡고 있는 자격증, 이번엔 한국어 능력시험이다.

세상에는 검증해야 할 능력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이러한 인고의 시간을 몇 번 거치고 나면 내가 얼마나 증명할 것이 없는지,

사회적으로 무능한 사람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를 증명해야 할 서류상의 무언가가 간절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공부를 시작할 때마다 이 모든 것을 증명하고 나면 삶이 얼마나 더 윤택해질지 고민했다.

첫 스케일링으로 날카로워진 치아 사이를 혀로 느끼며

자격증과 행복의 간극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야식으로 치킨을 먹는 아빠의 곁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을 기다리고 외면하고 견뎌왔는지.

열리지 않는 나의 방문이 쉬이 열리기를 기대하며

조금씩 아빠에게 가고자 꿈틀였던 마음이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그러니 충치를 발견하고 공부는 못했어도 오늘은 내가 기특한 날이다.

치킨을 좀 많이 먹었지만 내일 첫 필라테스를 시작하니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내일 모두 생경한 무언가를 시작하는 날이다.

그리고 아마 큰 가능성으로 나는, 내일도 다른 종류의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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