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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y 15. 2022

나를 해방시키는 방법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정주행했다. 지난 일주일을 다운 무드로 지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는 경기도에 사는 주인공들이 서울로 출퇴근한다는 맥락 속에서,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삶을 살아내는 이야기다. 나 역시 청주의 중심지를 벗어난 계란 흰자 같은 곳에서 살고 있기에 신체적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내 힘듦의 시발점도 통학에 대한 것이었다. 사실 대학교까지 왕복 2시간, 넓은 배차 간격으로 길면 왕복 3시간까지 걸리는 이 통학길을 힘들다고 명명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집 역시 같은 청주시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기숙사는 말도 못 꺼내고, 자취는 두말할 것도 없지. 어디 같은 청주시 안에서 자취를 하고 기숙을 할 테냐.


그렇기에 무말랭이처럼 수척한 얼굴로 출퇴근길을 견디는 주인공들에게 동지애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시작일 뿐이다. 과연 출퇴근길이 짧아진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행복해질까? hell no… 나의 삶이 퍽퍽한 이유를 통학길과 피곤함으로 미루어보았지만, 바로 집 앞에 학교가 있다고 해서 갑작스레 삶이 촉촉해지진 않을 것 같았다. 지난 일주일간 친구와 산책해보기도 하고, 글도 쓰고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결국은 혼자 선 길바닥에서 이유를 알아냈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이유를.


나는 본래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잘하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 따라 말이 생각만큼 팍팍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말과 글의 능력을 달라고 신께 구했다. 원래 있었던 거니까 도로 돌려달라고 떼를 썼다. 그런데 말을 왜 잘하고 싶을까? 그야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으니까. 근데 내가 말을 잘해도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 왜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싶은거지? 왜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내가 나를 사랑하려면 그게 필요하니까.


여기서 문제를 발견했다. 나는 요즘 돈이 없다는 이유로 옷도, 신발도, 가방도 사지 못했다. 그리고 네일도 못한다. 오픽 공부도 해야 하고 글도 써야 하는데 자꾸만 미뤄두는 나한테 싫증이 났다. 사람들하고 잘 지내야 마음이 편한데 자꾸만 미묘하게 수틀리는 일이 생긴다. 그러니 자신감을 잃고 자존감도 흔들렸던 것이다. 내 자존감이 마음에, 중심에 있지 않고 겉모습에 있으니까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의 해방일지에 이런 대사가 있다. ‘언니는 언니가 대단하다는 걸 몰라서 불행한 것 같아’, ‘너 자신을 좀 알아라’. 물론 둘 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그래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 이 무기력함과 답답함에서 해방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남을 사랑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생각해봤어도 나를 사랑해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먼저 내 삶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좀 심어줄 것. 나는 보통 내가 좋아하는 사람보다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대할지를 생각하는 편이다. 그 관계를 개선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자꾸만 그 생각이 밀려들어온다. 딱히 무언가 잘못한 게 없어도 왠지 관계에서 긴장감이 느껴지면 나를 돌아보곤 했다. 이제는 그러지 않을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음에 두고 자꾸자꾸 생각할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 나를 위한 일에 시간을 쓸 것. 여기에는 운동과 커피, 글과 책, 영화, 산책, 캔들 켜기, 창문 열기, 계획적으로 살기, 아침 공기 마시기, 교회 일 열심히 하기 등이 있다. 나를 위한 일과 좋아하는 일이 섞여 있지만. 그리고 이 모든 일을 하지 못하고 또 실패하더라도 나를 인정하고 독려할 줄 알기. 하고 싶은 일이 이렇게 많은데 그동안 하기 싫은 일만 생각하면서 나를 괴롭힌 게 분하다. 물론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는 게 인생이라는 것도 안다. 그치만 온전히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기 위해 시간을 쓰는 게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데. 그 사랑을 받으면서도 나를 사랑해주지 못했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혼자 멍하니 앉아 드라마를 보면서도 주인공이 해방을 향해 전진하는 모든 과정이 기특해보였다. 그리고 그가 사랑을 넘어서는 크고 위대한 일을 꿈꾸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니 나도 나의 해방을 꿈꾸며 이 글을 쓴다. 이제 나는 이 글을 올리고 정확히 30분 뒤에 나의 해방일지를 본방사수할 것이다. 정말 오랜만에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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