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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y 16. 2022

동생이 보고싶다고?

오늘은 난데없이 동생이 보고 싶은 날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교회에 다녀와 간단한 저녁을 먹고 친구와 산책을 했다.

산책을 하다 나는 혼자가 되었고, 친구는 먼 길을 떠나 집으로 향했다.

산책은 상념을 불러오기 마련인데 나는 그것들이 싫지 않았다.

어떤 때는 생각이 깊어지기도 하고 가끔은 생각이 가라앉기도 한다.

오늘은 가라앉는 날이었다.

짭짤한 콩국수를 채썬 오이에 싸먹고 성에 차지 않아 통닭을 반쯤 뜯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다른 음식을 주문하고 이미 배부른 상태로 새 것을 포장해오는 내가 좋진 않았다.

지나친 배고픔보다 지나친 배부름이 나를 불쾌로 이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 불쾌의 상태로 가기 위해 이 통닭을 사오는 건지도 몰랐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행동에는 허리가 아플 정도로 늦잠을 자는 것, 양에 맞지 않게 많이 먹는 것 등이 있었다.

그렇게 배부르게 먹은 후에는 산책을 마다할 수가 없다.

평소 산책 메이트인 영이 오늘은 바빴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친구와 길을 나섰다.

새 친구는 나와의 산책이 거의 처음이었으므로 우리의 방향에 의문을 제시했고, 산책의 목적을 묻기도 했다.

보통 때 나는 영과 만나자마자 아무 말도 없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그리고 말의 게이트가 열리면 우리는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주로 내가 고민을 말하면 영이 들어주다가 피드백을 해주는 식이었다.

아니면 음식을 먹고 싶다거나 먹을 거라거나 먹었다는 이야기.

때로는 영이 짧게 고민을 말하기도 했는데 그건 매우 귀중한 일이었다.

그의 말은 그냥 나오는 법이 없고 생각의 수레를 차분히 돌린 뒤에 나오는 것이므로

나는 그 말들을 꼭꼭 씹어 먹으려고 노력했다.

나의 말은 대체로 가볍고 바쁘기 때문에 영의 화법을 조금은 배워둬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하튼 산책을 하다가 혼자가 된 나는 커피를 한 잔 사기로 했다.

집에 가서 분명 공부나 책이나 드라마를 볼 텐데 나를 위로해 줄 물질적인 보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스타벅스를 가기는 아까우니 메가커피를 가기로 한다.

전에 아르바이트했던 메가커피에서 오랜 기다림 끝에 아이스 라떼 한 잔을 받아 들었다.

빠르게 나오는 게 맛인 가성비 커피집이었는데 기다린 만큼 더 맛있어 보이긴 했다.

그러고는 핸드폰보다 무거운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땅을 보며 걸었다.

나에 대해 생각을 좀 하고 싶었다.

횡단보도를 건너자 키 큰 남자아이가 길을 비켜주었는데, 그 무빙이 몹시 어색하고 유연하였으므로 내 동생을 생각했다.

지금은 어른 티가 날 법하지만 1년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는 어색한 몸짓이 배어 있었다.

군대에 간 지금은 필연적으로 나와 만날 수 없어 내가 대신 그의 방을 점령해 캔들도 켜고 글도 쓰고 있다.

몰랐는데 캔들을 켜면 냄새만 좋은 게 아니라 소리도 좋다.

타닥타닥 소리가 나면서 생명체도 아닌 무엇이 타오르는 것을 보고 있으면 나보다 더 큰 존재로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여기 앉아 작은 바람에 흔들리며 수없이 꺼지는 동안 너는 아무리 큰 바람에도 소리에 향까지 내며 곱상하게도 타오르는구나.

캔들을 피우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인지 이제야 알았다.

동생이 없는 동안 나는 내 방에서 글을 한 자도 쓰지 않고 오직 동생 자리에서만 글을 쓰는 중이다.

왜냐하면 내 방에는 잡동사니가 너무 많았고, 그 자리에 앉아서는 나의 흔적에 파묻혀 나에 대한 생각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나를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생의 방과 책상은 황량하고 깨끗했으며 나의 흔적은 요만큼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동생이 군대에 간 지 1년 2개월이 지난 지금은 분명히 내 책상이라는 표식을 하고 있긴 하다.

이런 자리에서 힘들어 울고 그러다 글을 쓰고 그러다 포기하면서 동생과도 화해 비슷한 무언가를 한 게 아닌가.

내게 오랫동안 애증의 대상이던 동생이었다. 내게는 한없이 예민하고 강퍅한 아이였다.

절대 욕을 하지 않는 나에게 자기 멋대로 욕을 퍼붓는 애였다.

그래놓고 내 방에 들어와 할 말도 없이 침대에 털썩 누워버리는 애였다.

그래서 나는 동생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친구들에게 말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나는 표현에 최선을 다한 거였다.

원래 가족은 좀 떨어져야 애틋해진다고 하던데, 우리는 1년 2개월만큼 떨어져 있었으니 딱 그만큼 애틋해진 건가.

24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한 번 그리운 적 없던 동생이지만 이제는 조금 보고싶어졌다.

내게 길을 비켜주던 어색하고도 유연한 남자아이 덕에 동생에게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할 뻔했다.

물론 아직 전화를 걸어 보고싶다고 할 만큼 미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충동적으로 그래버릴지도 모른다.

동생이 보고 싶은 날이 오기도 하는 구나. 오래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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