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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y 19. 2022

코로나 막차 탔다

아무리  코를 쑤셔봐도 음성이 나왔었다.  안도 긁어보고 코를 쑤시다 눈물도 찔끔 났지만 자가키트가 내게 보여준 것은 강경한  줄이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지금껏  주변에서 코로롱을 겪은 사람들과 증상이 똑같았는데. 목도 깔깔했고 부어서 침도  삼키고, 콧물도 주르륵 흘렀으며 무엇보다 무기력했다.


코로롱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강한 부정이 오히려 내겐 긍정으로 느껴졌다. 모두들 코로나가 아닐 거라고 말해주었지만, 나는 이쯤 되니 코로나이기를 바랐다. 어쩌면 이제 코로나에 걸렸다는 소식 쯤은 정상이 되어버렸으니, 나도 그만 내 질병을 인정하고 푹 쉬고 싶었다. 그렇게 병원을 찾자 의사 선생님은 내 양쪽 코를 쑤셨다. 그의 손길은 젠틀했지만 꽤 과감했고, 나는 이 막대기가 눈알에 닿는 것 같은 아찔함을 느꼈다.


아, 이래서 내 자가 진단은 음성이었구나. 아플 만큼 코를 쑤신다는 게 얼마나 본능에 어긋나는 일인가. 내 본능은 자가진단 키트 스무 개쯤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의사 선생님의 코는 멀쩡했다. 그래도 나는 드디어 무기력함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양성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네???’ 하고 반문해버렸지만, 내심 기뻤다. 지난 일주일의 무기력과 목의 통증을 연관지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 원인까지 찾아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의사 선생님이 권유한 엉덩이 주사까지 맞고 터벅터벅 집으로 걸어왔다. 사실 목보다 엉덩이가 더 아팠다. 간호사 언니가 엉덩이 아플 거라고 많이 문지르라고 했는데, 어설프게 문지르는 척만 했던 잘못이다. 욱신거리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내 보폭의 반도 안 되는 걸음으로 종종 걸었다. 걸을 때마다 평소에 내 엉덩이 근육이 얼마나 애썼는지를 알 수 있었다. 한 걸음에도 이렇게 많은 근육과 노력이 가해진다면 나는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게 마땅하다.


그렇게 다정한 전화를 받으며, 또 내가 알려야 할 사람들에게 알리며 걱정과 우려를 한 몸에 받았다. 코로나에 걸렸다 나은 사람들은 물과 목캔디를 많이 섭취하라는 꿀팁들을 전수해주었고, 친한 친구들은 웃기도 했다. 사실 나도 웃겼다. 아직 감염병으로 삶 전체를 걱정할 만큼 철이 들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미각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불닭볶음면부터 샀다. 평소에는 매워서 잘 먹지도 못하는 건데, 코로나로 입맛이 떨어질 수도 있다는 무시무시한 염려에 미리 대비하고 싶었다. 입맛도 없이, 후각도 없이 살아야한다면 많은 행복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어벤져스 시리즈를 보며 생각했다. 평소 보고 싶었던 영화와 드라마들을 잔뜩 볼 참이었는데, 나는 아직 많이 아프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다면 평소 같은 일상을 보내야 할 것이 아닌가? 특히 자격증 시험과 글쓰기 같은 것들은 미룰 수록 나만 손해인 것들이다. 일주일만 멈춰도 내 삶에 지장을 줄 것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나는 꽤나 생산적이고 장기적인 일들을 해왔던 것일 테다.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게 도통 감이 안 왔는데, 멈추려 하고 보니 얼굴을 쓱 들이민다.


그래도 나는 이 시간을 귀하게 받아들이며 조금은 쉴 것이라 다짐한다. 일주일에 하루도 안 나가는 삶이 몇 년만인지는 몰라도 한 번 해봐야지 뭐. 하다보면 혼자서도 즐거워하는 일에 익숙해질 수도 있고, 그럼 나는 더 큰 어른이 되어있을 것이다. 비록 어제 쓰고 저장해 둔 글을 다시 보며 실망했지만, 그러니 더더욱 글을 쓰는 근육을 길러둬야겠지. 한 걸음에도 수많은 근육을 사용하는 내 엉덩이처럼, 글 하나에도 영혼을 옮겨 담는 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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