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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y 21. 2022

격리된 자의 상념


하루 종일 집안에서 마스크를 썼다 벘었다 한다. 격리자의 삶이란 이런 것이다. 하루 아침에 뭉친 병균으로 전락한 느낌. 주변에 병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적지만, 이 질병은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을 거쳐갔다. 나의 친구들, 가족들, 교인들까지. 질병이란 건 예외가 없으니까. 교만하게도 시간이 이쯤 되니 내게는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가 완전히 다른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다. 시간 단위로 계획을 세우지는 않아도 몇시쯤 내가 무얼 하고 있을지 예상이 됐었는데. 솔직히 지금이라고 아예 계획이 없진 않지만  이 계획들은 다분히 비생산적이어서 지킬 맛도 안 난다. 예컨대 오늘은 어벤져스 시리즈 남은 걸 다 보고, 목욕을 하고, 저녁을 먹어야겠다. 이틀 동안 안 씻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저녁에는 책도 읽고 글을 좀 써 봐야지, 하는 것들. 물론 모두 지켰다. 그래서 하루에 영화를 세 편이나 보는 건 눈과 영혼에 꽤 혹독한 일임을 알았다. 그리고 아픈 사람은 거품 목욕을 하면 안 된다는 것도. 거품이랑 같이 기운도 빠져나가서 손이 떨렸다.


보통의 집이라면 내가 방에 갇힌 채 격리되었겠지만 우리집은 저녁에만 들어오는 아빠가 격리되는 식이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내가 거실과 동생 방, 내 방을 누비는 동안 아빠는 저녁까지 먹고 들어와서 화장실이 딸린 안방으로 격리된다. 그래서 나는 내 방과 동생 방을 제외한 모든 곳에서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닌다. 혹시라도 공용 공간에 내 흔적이 남으면 곤란하니까. 아빠는 방문까지 걸어잠그고 나올 때마다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나는 내가 지나간 자리마다 축축해질 만큼 소독약을 뿌려야 한다. 실제로 소독약이 분사될 때만큼은 나도 마음이 놓인다. 어디에 남겨두었을지 모를 채취까지 싹 다 덮어버려야 한다.


그리고 나는 하루 동안  식사만 알아서 차려 먹으면 되었다. 아빠는 갑자기 세균 덩어리가  내가 무서워서인지 밖에서 끼니를 해결한다. 잊어버릴  전화도  번씩 걸어 밥을 먹었는지 물어보곤 한다. 사실 하루 사이  서글프기도 했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누가  끼니를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외의 누군가 끼니 챙기지 않아도 된다는 . 물론 아빠도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돌본다. 우리집에서 처음 보는 머랭 쿠키나 산딸기 등을 사오는 식으로, 그리고 배달 음식을 무제한 허용하는 식으로. 그래 나는  끼니마다 몸을 일으켜 냉면이나 김치찜 등의 든든한 식사 기고, 버블티와 커피를 시켜 먹었다. 목이 아파도 배는 고프고, 그러니 더더욱  때를 놓치면  된다.


격리 일주일 중에 아직 이틀 밖에 안 되었다. 그럼에도 간간이 한숨을 쉰다. 실내가 답답해서라기보단 이 시간을 생산적으로 쓸 것이냐, 다 내려놓고 쉴 것이냐 하는 고민 때문이다. 물론 다들 쉬라고 할 것이고, 나 역시 같은 상황에 놓였던 지인들에게 푹 쉬라고 말해왔다. 그러나 당사자가 되고 보니 일주일은 꽤 긴 것이었고, 나는 격리에서 해방되자마자 일상의 삶으로 정상 복귀해야 할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해두어야 할 작업들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과제라거나, 발표라거나, 영어라거나, 글이라거나… 나는 물리적으로 격리되었지만 일상과는 격리되지 못했다. 도처에 현실과 작업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틀 만에 성찰도 해냈다. 섬세한 언어로 쓰인 책과 글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무심했는지를 깨달은 것이다. 역지사지라는 게 감정에는 잘 되는데, 사실에는 영 되지 않았다. 친구들이 밀접 접촉자가 되었다며 약속에 나와도 되냐고 물었을 때, 몇 번이고 반대했었다. 단순히 내가 걱정돼서였다. 그리고 확진된 친구가 쓰레기만 버리고 오면 안 될까 고민할 때도 극구만류했다. 절대 안 된다고. 이 질병이 흔해 빠지긴 해도 어쨌든 아픈 구석이 있다는 말인데, 나는 그들을 피하기만 급급했던 것이다. 격리된 그들이 얼마나 외로운지 조금이라도 두려운지를 묻지 못했다.


사실 내가 막연한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그들을 돌아보는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게 이렇게 이기적이어서 본인이 겪기 전까진 몸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가래가 껴서 기침을 하다 보니 폐가 아프다. 폐가 아픈 느낌이 너무 오랜만이라 두려운데, 일주일만에 이 모든 것이 칼같이 고쳐질까 하는 의심도 든다. 나는 다음주 목요일 밤 12시가 되면 자유의 몸일 텐데 그 때가 되면 내 몸에 병균 하나 없는 게 확실한지도 모르겠다. 알람 없이 자고 일어나서 부어오른 목을 가다듬는 것도 어색할 뿐이다. 모든 게 불확실하고 움직임도 귀찮아져버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각하는 일뿐이다.


생각을 하니까 글도 쓸 수 있고, 영화를 보고 느끼는 것도 생긴다. 어벤져스 시리즈를 연달아 보니 그들은 뭉쳤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다가 바보 같은 실수도 하고 최선의 선택도 한다. 그 안에선 모든 게 필연적이어서 불필요한 움직임이 없다. 그들은 그저 최선의 평화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지키려고 목숨을 내놓기도 하는 기상천외한 영웅들이다. 나는 그런 영웅까지는 못 되지만 적어도 활자로 누군가를 일으키는 인물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축 처져버린 엉덩이를 일으켜고 생각의 회로를 돌리고 숨 쉴 구멍을 하나쯤 더 뚫어주는 그런 글. 아이러니하게도 마스크를 쓰고서 쓰는 글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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