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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May 25. 2022

하나님을 움직이는 믿음

끝없는 우울에서 나를 건져올린 것은 작은 글이었다. 이미 나를 덮쳐버린 듯한 어둠이 단번에 걷히는 것이었다. 일주일간 격리를 하면서, 사실 그보다 훨씬 전부터 나는 이유 모를 무기력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모든 게 귀찮았고, 부담스러웠고, 무의미했다. 다들 나에게 무언가를 원하는 것 같았고 계속해서 그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도 그랬고, 글도 그랬고, 사람도 그랬다. 모든 게 부담으로 느껴질 때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는 거랬는데 딱 맞았다. 청년부 회장이라는 사람이 기도에 집중도 못하고, 몇 가지 중요한 사안들만 전달하듯이 기도 시간을 보내버렸다. 마음이 지쳤고 공허했다. 아무래도 이건 하나님의 공백기인 거였다.


늘 함께 할 거라고 믿고 따르던 하나님을 철저히 외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헤엄치려고 했다. 믿음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실제로 믿었던 내가 믿음 없이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은 멀리 했고, 그래서 글도 기도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고여있던 거였다. 그건 내 존재론적인 문제였는데 나는 드러나는 이유를 찾고싶었다. 본질적인 문제 말고 핑계처럼 둘러댈 수 있는 그런 이유.


내가 왜 힘든지도 모르면서 사람들을 탓했고, 나를 탓했고, 코로나를 탓했다. 코로나에 확진되기 몇 주전부터 이랬으면서 마치 코로나 때문에 내가 우울했던 것처럼 무의식을 조종했다. 코로나라는 아주 좋은 핑곗거리로 무기력함을 대신했다. 그러나 신체는 점점 회복이 되는데 내 정신은 제자리인 거다. 이건 뭔가 다른 문제가 아닌가, 격리 기간이 끝나갈수록 불안해졌다. 나는 아직도 무기력하고 만사가 귀찮은데 왜 내 몸은 성급하게 완치를 향해 가는가. 내일은 격리가 끝나는 날인데.


내일이 오기 전, 마지막처럼 오늘을 즐겨야겠다. 그래서 오늘도 어제와 같이 영화를 봤다. 지난 격리 기간 동안 나를 상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었던 피 터지는 마블 영화들. 강렬하고 자극적이어서 내 머리와 생각을 잠시 쉬게 해줄 그것이 필요했다. 실제로 걔들은 세계관이 너무 크고 장대해서 봐야 할 시리즈들도 많았고, 이해해야 할 스토리도 많았다. 몸보다 머리가 지끈한 환자에게 딱 적합한 녀석이었다. 아마도 마지막 영화가 될 오늘의 선택은 캡틴 아메리카였다. 어벤져스, 아이언맨, 토르, 블랙팬서, 캡틴 마블을 모두 정주행한 나로서는 별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그 외 나머지 영화들은 이미 본 것들이었으므로.


결국 캡틴 아메리카가 내 마지막 격리 메이트가 되어 주었고 히드라와 쉴드를 드디어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배부르지 않은 저녁을 먹고 씻다가 글을 쓴 다음, 유튜브를 보다가 편안한 영화 하나를 보기로 했다. 잠들기 전 나를 유사 수면 상태에 이르게 할 그런 영화로. 곧 세 번째로 보게 될 ‘노트북’이었다. 라이언 고슬링을 좋아하고 레이첼 맥아담스를 더 좋아하게 된 첫 영화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랑 영화기도 하다. 영화를 보다가 종래는 눈물과 콧물을 뒤섞을 정도로 펑펑 울었는데, 어쩐지 영화보다 그냥 내가 슬퍼서 우는 것 같았다. 영화가 무지하게 슬프긴 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우는 게 확실했다. 그런데도 이 감정이 나를 오히려 청명하게 만들었고 영혼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콧물을 시원하게 풀고 세수를 하고 기도를 하려 앉았다. 막상 기도할 용기가 나지 않자 손은 자연스럽게 인스타를 켰고 화면을 조금 내리고 나니 용기가 없는 크리스천을 위한 글이 나왔다. 이런 내용의 글이었다. 한 번 뿐인 소중한 인생인데,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썩히면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 그게 죄를 짓는 게 아니고, 누군가를 상하게 하는 게 아니라면,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하면서 모든 것을 누리고 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작가가 직접 전하는 말도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당신 안에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원하는 마음의 소원이 당신에게 있다면..  때부터는 주저하지 말고, 그냥 믿음으로 시도해봐요!”

_ 인스타그램 @blessgenie 게시글


나는 하나님을 무지하게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기를 무지하게 원하는데, 모순되게도 무지하게 주저하고 믿음 없이 시도도 안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머리를 때렸다. 믿음 없이 사는 나는 시체와 다르지 않구나. 나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실제로 그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오히려 하나님을 믿으면서 사는 게 너무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포기해야 할 것도, 지켜야 할 것도 너무 많은 삶이라고.


근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 내가 할 것은 그냥 하나님을 믿고 그 안에서 푹 쉬는 거였다. 이 땅에서의 삶이 내게 전쟁과도 같지만 하나님이라는 보호막 안에 있으니까 전쟁도 쉼이 될 수 있는 거였다. 나의 무자비한 무지함과 불신이 지난 몇 주간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문장으로 눈이 뜨인 순간, 지난 슬픔과 고통의 경험이 내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슬픔과 눈물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네요. 내가 내 힘으로 아등바등 살려고 하면 이렇게 살 수밖에 없군요, 하고 미리 체험하게 하신 거였다.


이 어둠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까, 과연 내가 다시 힘 있게 살 수 있는 걸까, 의심했는데 단번에 나를 일으켜서 먼지를 털어주시는 하나님이다. 그리고 나는 반드시 그런 글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에게 희망과 용기와 생기를 주는 그런 글. 누워있던 누군가를 단숨에 일으킬 수 있는 그런 글.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보고 생각을 바꾸고 소망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테니.


비록 나는 엉망이지만 하나님은 그런 나의 믿음으로 움직이시는 분이다. 믿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아야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라는 걸 가질 수 있는 특권을 주셔서 그 믿음을 통해 일하심을 직접 보게 하신다.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게 하시는 거다. 그러니 우선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 앉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그 작은 발을 움직인 게 기특해서 하나님이 무엇을 채워주실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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