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열음 Jun 19. 2022

종강과 게으름의 상관 관계


이번주에 종강을 했다. 그 전과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이완이랄까. 일생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맞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보상심리가 들었다. 그래서 월요일에 종강을 하고는, 토요일까지 공부하기와 글쓰기를 좀 삭제해뒀다. 하는 것만으로도 생산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일들을 멀리 하니 죄책감이 들 수밖에. 그러다 보니 몸을 일으켜야 한다는 관성과 오래 편안하고 싶다는 본능이 다투기 시작했다. 마음껏 쉬어도 되는 건지, 적당히 쉬다 돌아가야 하는 건지 4학년인 나는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놀아도 된다고 말해달라고 했다. 나의 피곤한 합리화 대신, 신뢰하는 누군가의 육성을 듣고 싶었다.


실은 그냥 넷플릭스를 보면서 소파에 앉아 있는 게 몹시 편했는데, 그게 너무나도 길티하게 느껴졌다. 온몸이 잔뜩 이완된 만큼 생각의 고리도 잠시 끊어뒀기 때문이다. 내가 보는 미드에서는 자꾸 사람이 죽고 거짓말을 하고 결국은 울고 있는데, 지독한 현실처럼 느껴져서 당장 문제가 해결되는 걸 봐야 직성이 풀렸다. 예쁜 사람들이 자꾸 못된 사람들을 만나서 배신당하고 곤란해지는 게 싫었다. 이 막장 드라마가 현실을 축소한 건지 확대한 건지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티비를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시간 관념이 사라질 법하다. 근데 우리집은 티비 바로 옆에 시계가 있어서 그럴 틈이 없다. 나는 계속해서 다음 회차까지 시청하면 언제부터 공부할 수 있는지를 계산하고 있다. 시간이 미뤄질 수록 나는 불쾌한 쾌락을 맛봐야 한다. 죄책감과 맞바꾼 무언가를. 이건 집에 혼자 있을 때 더욱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누군가 집에 있으면 거실을 내줘야 할 때도 있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 때도 있는데 혼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회차가 끝날 때만 잠깐 움직여도 될 만큼 일을 축소시키는 능력만 키운다.


그러면서 가끔은 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확인을 해줘야 한다. 나와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무얼 하고 있는지. 또 별로 친하진 않지만, 자주 이름이 보여서 친숙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도 확인을 한다. 이런 게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기도 한다. 유튜브, 인스타, 카톡을 유연하게 넘나들면서 멀티태스킹하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멀티태스킹이란 있을 수 없다며, 집중을 분할하기 때문에 손해보는 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분명 나는 멀티태스킹을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넷플릭스를 보면서 손에 세상을 쥐면, 나는 집에 있는데 밖에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과 정보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내 표정을 보지 못하지만 나는 그들의 정제된 표정을 본다. 그게 사실이 아닌 줄 알면서도 때로는 무지하게 부러울 때도 있다. 나도 일어나서 글을 써야 할 것 같고, 영어 자격증 공부를 당장에 시작해야할 것 같지만. 그것 쯤은 당장 시작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내 이름으로 된 넷플 계정에 접속하는 거다. 그러면서 평생 이름 하나를 갖고 사는 데 필요한 것들이 너무 많으니, 때로는 그냥 이름만으로 존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얼굴 없는 가수, 그런 느낌으로다가.


그러다 오늘 저녁은 짬뽕이나 떡볶이를 먹겠다고 다짐했다. 점심에 혼자 나가서 짬뽕을 먹을까 고민할 만큼 간절했는데, 그걸 참고 열무비빔밥을 해먹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다이어트를 한다길래 나도 몸을 가볍게 써보고 싶어서 같이 시작했는데, 내 식단이 욕구를 철저히 반영하고 있어서 면목이 없었다. 그 욕구를 죽도록 참는 게 바로 다이어트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저녁으로 바질크림떡볶이를 먹었고, 그게 꽤나 정크 푸드처럼 느껴져서 또 죄책감이 들었다. 죄책감이 겹치고 겹치면 자리를 박차기 마련이다.


결국 몸을 일으켜 카페에 가기로 한다. 오후에 가려고 했었지만 계획이 틀어졌으므로. 저녁에 카페를 간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한다는 걸 의미한다. 나는 오늘 반드시 영어 공부를 시작할 것이었기 때문에, 더는 미루지 않기로 했다. 두 시간만에 해야 할 일이 마무리 되었고, 내가 거기서 엉터리 영어를 웅얼거리는 동안 나 말고 두 팀의 손님이 오갔다. 하나는 중년 남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가족 모임 같았다. 언젠가 나도 우리 가족 모임을 카페에서 하리라. 언젠가 해야 할 것들이 많아질 수록 나는 오래 살고 싶어지려나.


오늘 깨달은 바로는, 내가 소파보다 의자가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거다. 딱딱한 의자에 앉으니 내 자리를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집을 꾸미는 날이 온다면 티비는 두지 말아야 겠다. 적어도 티비와 소파를 일직선 상에 두지는 않을 거다. 그건 나에게 너무 유혹적인 자리고, 혼자 있기를 거부하는 빌미가 될 거기 때문이다. 나는 게으름을 피하기 위해 자꾸만 혼자 있지 않으려 할 테고, 그러면 나는 정신 없이 글쓰는 시간을 누리지 못할 테니깐. 아무래도 혼자 있는 시간이 즐거워지는 만큼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맥심 3개와 10개의 차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