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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Jun 26. 2022

우울함이 다가올수록 해야하는 일

게으름에 관한 글을 쓴지 일주일이 지났다. 애석하게도 지난 일주일간 더욱 게으른 나날들을 보냈다. 어쩌면 단지 게으른 것만이 아니라 무언가 잘못되어간다는 느낌도 받았다. 적어도 3일에 한번은 글을 쓰겠다는 야망은 그저 욕심이 되어 내게 짙은 죄책감을 선사했고, 거의  달째 나는 무력하고도 우울한 시간을 지냈다. 처음에는 PMS이거나 계절이 주는 골치 아픈 선물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점점 마음이 유약해지는  확실했다. 아빠와는 대화하고 싶지 않았고, 나쁜 말들이 자주 속에서부터 올라오며, 울지 않는 날이 거의 없어졌다. 행복은 기를 쓰고 찾는 게 아니라고 하지만, 가끔은 기를 써야만 아주 작은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지금이 그런 기를 써야할 때인 것 같았다.


어제까지는 2박 3일동안 전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평소만치 느긋하고 게으르고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집에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공간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나를 자주 안심하게 만들었다. 그들과는 조용히 있어도 편안했고, 아무 때나 깊은 얘기를 꺼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마음에 있는 말들을 숨겨 두고 입에만 맴도는 말을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상황인 거다. 가끔은 서로의 동작이 터무니없이 웃기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애들과 이해하지 못할 말과 행동들을 하고 싶었고, 그런 여행을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날에는 남자친구와 함께 있었다. 자주 자고 가라고 말하는 그가 사랑스러우면서도 가끔은 원망스러웠다. 보통은 야간에 글을 쓰거나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나로서는 그것들을 대부분 포기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의 시간은 내가 보내는 모든 시간 중에 가장 달콤하고 직설적으로 행복한 시간이었으므로 나는 종종 계획과의 타협을 시도했고, 다소 현실성이 부족하더라도 그 타협안은 적극 체결되곤 했다.


여행 전날 그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슬프지만 행복했다. 타이밍이 좋게도 그 날이 우리의 700일이었고, 700일 동안이나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해온 게 너무 대견해서 아웃백을 가기로 했다. 둘다 근 10년만에 가는 거였기 때문에, 아웃백이 아직도 그렇게 핫한지 모르고 살았다. 우리는 대기 번호까지 받으면서 두꺼운 스테이크와 크림 파스타와 치즈 감자 등등을 시켰지만, 모두 내가 한 음식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보다 못하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남자친구도 똑같은 말을 했다.


생각보다 우리가 평소에 양질의 음식을 먹고 살았던 거구나, 생각하며 한편으로는 감사했다. 비싼 돈을 내지 않아도 서로를 행복하게 해주었던 음식이 이미 우리에게 있었다는 사실이 풍요로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매번 기념일마다 진행했던 지난 시간 되돌아보기 코너가 있었다. 주로 ‘700일동안 나랑 만나면서 어땠어?’ 하는 둥의 말로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와의 연애 덕에 생각의 넓이가 커졌고, 몸과 마음이 많이 자랐으며 꽉 찬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했고 그런 말을 했다.


그러다 내가 평소에 쓰던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그가 내 글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과묵한 나의 집과 솔직한 그의 집이 극명하게 갈리는 순간이었다. 그는 내가 아빠에게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에만 담아두면서 한을 키우는 일을 편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가 충분히 표현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서 그럴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아픔의 깊이를 다 이해할 수 없어서 혼자 생각만 하고 있댔다. 그 말을 들으니 억울하다가도 고마웠다.


나는 요즘 정말 많이 울곤 했는데, 그 날도 역시 억제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이야기를 하다가 몸을 돌려서 반대쪽을 바라보았는데, 그쪽 베개를 적실 만큼 울었다. 그가 내 몸을 돌려서 나를 안아주자 이번에는 반대쪽 베개를 적셨다. 베개를 적시는 일이 내게는 너무 익숙해서 그 적나라한 흔적을 봐도 놀랍지 않았다. 그저 이 추잡한 콧물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졸렸었던 그를 붙들고 긴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그가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계속해서 그 어려운 글을 쓸 거라고 말했다.


그러다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을 그에게 했다. 길게 아프고 자주 마음을 소란스럽게 했던 말을 하고 나니, 너무 개운했지만 눈물이 계속 났다.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애처럼 엉엉 울었다. 그는 내가 마음껏 아이처럼 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둘만 들을 수 있는 부끄럽고 어지러운 말들, 살과 살을 맞대는 표현들, 마음을 턱 내려놓고 떼를 쓸 수 있는 그런 거. 완전한 남이 700일 동안 이런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나는 이제 그가 없이는 아주 많은 것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사랑을 듬뿍 받고 붙어있는 시간과, 사랑은 받지만 붙어 있지 않은 시간은 너무도 다르게 흘렀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약했고 그래서 자주 외로워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내 마음이 약해졌다는 증거였다. 나는 나로서 충만할 때, 혼자 글을 쓰거나 책을 보거나 티비를 보는 시간을 사랑했다. 그런 시간들이 나의 영혼을 메우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직면할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 단추를 잘못 채운 옷가지 같은 상황에 놓인 거다.


더이상 우울이나 무기력이 나를 괴롭히지 못하게 하려면, 내가 무서운 사람이라는 걸 보여줘야 할 듯했다. 나는 금방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고, 이 우울에는 끝이 있음을 안다고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솔직히 침대에서 눈물을 흘릴 때는 그런 생각을 못하지만, 이렇게 글을 쓸 때는 그런 강인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을 쓸 때마다 잦은 우울을 끝맺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결국 이 질긴 우울을 계속 붙들고 있던 이유는, 내가 해야하는 일종의 숙명 같은 일들을 멀리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테면 글을 쓰거나, 기도를 하거나, 햇빛을 쐐고 몸을 움직이는 일 같은 것들. 여기에 더하자면 아빠와 잘 지내는 것도. 아빠와 잘 지내지 못할 수록 나는 고립되었고, 외로워졌고, 슬퍼졌다. 그건 아빠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나에 대한 파괴인 거였다. 결국 나의 데일리 플래너에 적힌 모든 일들을 완성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는 절대 건너뛸 수 없는 일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비교적 덜 중요한 일들에 묻혀 함께 외면당하곤 했지만 말이다.


내가 그 일들을 가까이 할 수록 내 불온한 마음이 멀어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래서 오늘은 편안한 마음으로 잠에 들 것이다. 나도 몰랐지만 아마도 내가 이 이야기를 꼭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무언가 중요한 임무를 완수한 것 같은 확신이 계속해서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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