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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Jun 30. 2022

여름이 좋은 이유

질긴 장마철이 시작됐다. 동남아를 연상케하는 습한 공기가 얼굴에 스며들지만, 그래도 나는 확실히! 여름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잠시 잠깐 우리를 괴롭히는 장마 때문에 여름을 온통 미워할 수는 없지 않나.


우선 여름이 좋은 이유는 수련회 냄새 때문이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교회에서도 그렇고, 여름은 수련회의 설렘과 느낌을 담고 있다. 이불과 베개, 시끄러운 친구들만 있고 아무것도 없는 그 수련회의 방. 매년 여름마다 그런 하찮은 방에 모여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던 밤들이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름이면 에어컨에 갇혀 바깥세상과 단절되는 분위기도 좋다. 창문과 방문을 모두 닫고 거실과 부엌, 복도만 살아남은 집에서 옥수수 또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선풍기와 에어컨을 동시에 틀어놓는 호사를 누리는 건 더 좋다.


우리집은 이제 막 에어컨을 켜기 시작했는데, 벌써부터 그 찬맛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원래는 공부를 하려면 카페라도 가야했는데, 카페를 가는 길이 얼마나 축축하고 습할지 알기 때문에 섣불리 집밖을 나설 수 없다. 일어나자마자 에어컨 앞으로 달려가서, 밖에 나갈 엄두도 못 내고 거실에 갇혀 있는 내가 싫지 않다.


게다가 여름은 한 해의 가운데 있다. 신년은 비장하게 시작하는 느낌이고 연말은 부랴부랴 끝내야 하는 느낌이라면, 여름은 그런 게 없다.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도 좋고, 동시에 끝내기도 좋은 때다. 그래서 나는 오픽과 필라테스를 시작했고, 글쓰기와 연애를 진행중이며, 유튜브와 학업을 끝냈다.


물론 내가 지금 에어컨 공기 속에서, 선풍기로 온몸을 펄럭이고 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 내일 신발에 비를 맞으면서 습기를 정면으로 때려 맞으면 글을 삭제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런 것들은 시원하고 쾌적한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쏙 들어갈 걸 안다.


또 여름은 내가 남자친구를 만난 계절이기도 하다. 2년전 7월, 한반도를 휩쓸었던 한 달간의 길고 긴 장마 속에 우리는 만났다. 코로나로 가장 고통받던 시기인 데다가, 우중충한 장마를 한 달 내리 겪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둘 코로나 블루를 호소해야 했다. 그런 사람들 틈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느라 우울할 새가 없었다.


처음 오빠차를 타면서 우산을 접었던 기억도, 마스크를 잘 쓰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들었던 기억도, 비가 오는 날에도 강경하게 드라이브를 떠났던 기억도 너무 소중해서 이 계절을 더 사랑하게 됐다. 오빠는 완전한 겨울파지만 나와 만난 걸 감안하면 여름을 조금 더 사랑해줄 지도 모른다. 비록 더위를 피하려고 하루에 다섯번씩 찬물 샤워를 하는 사람이지만 말이다.


나는 여름에는 뜨겁고 겨울에는 차가운, 안타까운 몸이지만 내 몸에 반하더라도 여름을 사랑할 용의가 있다. 그 정도의 여유는 가진 사람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파랑색을 좋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름은 파랑을 추구하는 계절이지만 실제로 파랑이 가장 많은 계절이기도 하니까. 지금은 먹구름에 가려진 파란 하늘부터 보고 싶다.


아직은 시작되지 않은 매미 소리와 아지랑이도 조만간 우리를 찾아올 테다. 매미 소리를 생각하면 왜인지 어렸을 때 봤던 짱구나 아따맘마 같은 만화들이 생각나곤 한다. 항상 맑은 하늘을 첫 장면으로, 평화로운 노래를 들려주던 만화들이 그리운 것 같다. 평범한 집에서 엉뚱한 일이 일어나는 그 평화가 이 여름을 닮았나보다.


그러니 이 여름과 평화를 사랑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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