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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Jul 14. 2022

스타벅스 면접을 봤다


하루 아침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카페에서 일을 할 뻔했다. 내년 해외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알바 자리를 알아보던 중이었다. 사실은 이 방학 기간 동안 열심히 자격증을 따고, 2학기가 시작되면 돈 좀 벌어볼 계획이었는데. 주변 스타벅스에서 사람을 구한다고 하니, 안하면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


혹여 떨어지더라도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자는 주의인지라, 내 손은 이미 지원서 페이지로 넘어가고 있었다. 분명 9페이지 중 1페이지의 인적사항만 기입해두려고 했는데 다음 페이지로 넘기자 지원이 완료되었단다. 결국 나는 스타벅스 본사 언니와 통화하고 자소서까지 써서 보내버렸다. 운명의 주사위를 냅다 던져본 거다.


사실 자소서를 첨삭하는 알바를 간간이 하고있던 터라, 400자짜리 자기소개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적절한 스토리텔링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업무 경험 등이 스무스하게 녹아있으면 되는 거였다. 덕분에 자소서를 쓴 다음날, 1지망 스타벅스에서 전화를 받았다. 자소서가 마음에 든다며 면접을 보러 오라는 소식이었다.


사실 일이 이렇게 일사천리로 풀릴 줄은 몰랐다. 어쩌면 내가 고민하고 걱정할 시간이 필요 없다는 신의 뜻일지도. 나의 1지망 스타벅스는 평소에도 공부하러, 놀러 참 많이 가던 곳이었는데. 바로 앞에 호수공원이 있는 데다가 넓고 분위기도 좋아서 항상 마음에 품고만 있었다. 어차피 카페 알바는 좀 해봤는데, 이왕이면 최고를 경험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에게 전화를 주신 점장님은 몇가지 궁금한 걸 물어보시더니, 되려 내게 궁금한 게 없는지 물어보셨다. 스타벅스는 알바의 개념이 없고 모두 바리스타라는 직원으로 들어가는지라, 게다가 스타벅스인지라 내게 질문도 받는구나 싶어서 감격스러웠다. 다른 카페에서는 면접 날짜만 띡 잡고 전화를 끊기 바빴었기 때문이다. 내게 당연한 질문권이 생기는 게 신기하고 새로웠다.


그렇게 전화를 끊자마자 문제를 발견했다. 스타벅스에 지원한 다음날, 아주 찐한 초록색의 젤네일을 하고 와버린 거다. 미리 예약이 잡혀 있었던 터라 아무 생각도 없이 받아버렸는데, 간만에 하는 네일이라 너무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왔는데. 그래서 면접 때 네일에 관해 물어본다면, 스타벅스의 대표색을 바르고 왔다는 헛소리라도 해볼까 고민했다.


면접 당일날, 하필이면 장마가 다시 시작되었고 내 기분도 쭉쭉 가라앉았다. 하늘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괜히 가기 싫은 마음만 생기기 시작한 거다. 그치만 역시 후회할 일은 만들기 싫으니 씩씩하게 첨벙거리며 도착해, 공짜 아메리카노를 하나 받고 면접을 시작했다. 평소라면 커피를 받을 때 기뻤겠지만, 조만간 내가 건네주는 손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착잡했다.


점장님은 내게 자기소개를 부탁했고, 나는 가끔씩 머리가 하얘지다가 선명해지다가 말하고 멈추곤 했다. 그 대화의 8할은 내 지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원하는 정보들을 이야기로 풀어서 전해주었고, 성취감이나 자신감 따위의 속성들을 하나씩 꺼내서 보여주었다. 대체로 물어보는 질문은 나에 관한 것, 경험에 관한 것, 포부에 관한 것들이었다. 결국 스타벅스가 찾는 사람은 바쁠 때도 마인드를 잘 관리하며 친절하게 오래 버틸 사람이었다.


점장님은 내가 면접 스터디를 하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는 최고의 칭찬을 해주었고, 덕분에 나는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내가 지금까지 헛소리를 하진 않았구나, 내 이야기가 설득력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들이 밀려들었다. 더욱이 물어보기 전에 할 말을 다 해줘서 더 물어볼 게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건 칭찬인지 아닌지 조금 헷갈리긴 했다.


여하튼 빗속에서도 면접은 끝났고 이루 말할 수 없는 홀가분함이 몰려왔다. 그 편안했던 스타벅스가 내 삶의 일부분이 될 가능성을 생각하니 조금 아득해졌다. 물론 이미 내 삶속에 깊이 들어와있지만. 사실 거의 붙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이런 걱정도 했던 거였다. 하지만 오늘 연락을 주겠다던 점장님은 오늘이 내일이 되기까지 연락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오만가지 망상을 하다가 잠잠해졌다. 다음 학기에 15학점을 들어야한다는 내 발언이 실은 폭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내가 스케줄링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다는 점장님의 말이 겹쳐지기 시작했다. 이유가 어떻든 사실 자존심이 상했다. 어쨌든 카페인데 내가 못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분개하다가 인정했다가 치사해졌다가 차분해지기를 반복했다. 남자친구는 점장님이 문자 보내는 걸 까먹었을 지도 모른다는 귀여운 위로와 포옹을 해주었고, 나는 그냥 그 덕에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생각해보니 나와 스타벅스는 함께 할 운명이 아니었나보다, 하고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작고 비겁한 마음이 ‘ 나를  뽑냐 오만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사실  자리가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주어진다면 억울할 일도 아니었다. 내가  5 5시간씩 커피를 팔았다면 글에 대한 욕망은 점점 멀어져갔을 거다. 게다가 하나님이 이런 내 마음을 보시려고 작은 실패를 주셨나 싶었다. 나의 진가는 하나님만 알아주셔도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면 스타벅스에서쯤은 행복한 손님으로 남아도 괜찮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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