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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Jul 25. 2022

예비 스타벅스 바리스타입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 면접에서 떨어졌다는 글을 쓴지 일주일. 합격 문자가 왔다. 너무 난데없는 문자라 심장이 두근대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분명 면접을 진행했던 점장님이 당일에 연락 줄거라고 했었는데. 그러곤 아무 연락도 없기에 당연히 떨어졌을 거라 단념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도 내 본업이 바리스타는 아니니까. 나는 내년도 여행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단일한 목표로 그 자리에 뛰어든 거였다. 안 그래도 카페 알바는 몇 번 해봤고, 스타벅스는 복지도 좋고 커피 맛도 좋으니까 한번쯤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하지만 일과 학업을 병행하겠다는 무시무시한 엄포 탓에 줄행랑을 친 줄 알았던 스타벅스가 다시 내게로 왔다!


그리고는 문자를 몇 개 더 받았다. 우선은 점장님 자신도 이메일을 늦게 받아서 당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스타벅스에 드레스코드가 있다는 사실도. 희거나 검거나 그 두개를 합친 체크무늬 카라 셔츠… 그리고 청바지에 검은 운동화. 그 자체로 스타벅스 같지 않나. 유니폼이 있는 줄 알았더니 감쪽 같은 개인 소장이었다.


평소 연두색, 하늘색, 베이지색을 즐겨 입는 나로서는 그런 샤츠가 있을리 만무했다. 당장 그걸 시킬까, 아니면 근처에 쇼핑을 하러 가볼까 고민하다가 결국 직접 보고 사는 편을 택했다. 결국 맘에 드는 게 없어 직전에 온라인으로 주문했지만, 그마저도 제때 받지 못할 것 같아 하루 전에 사러 가야 할 마당이다. 사실 좀 비싸지만 맘에 드는 셔츠가 하나 있었는데 내일 당장 가서 그걸 사들일 작정이다.


이런저런 흑심은 치워두고, 여하튼 나는 스타벅스의 바리스타가 되었다. 그 사실은 가벼우면서도 나를 기쁘게 했다. 평생 직업까지는 아니어도 좋아하는 카페의 손님에서 바리스타로의 역할 변경이라니. 거기서 앞치마를 두르고 사람들에게 무자비한 친절함을 베풀 나를 상상해보았다. 그 상상을 하면서 영어 닉네임도 야심차게 정해두었다.


이번주 수요일에 신입 교육을 받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마쳐야 했다. 떼가야 할 서류도 서너개 정도 되었고, 텀블러를 가져오라는 신선한 요구도 있었다. 아무래도 직접 음료를 만들어서 먹어보라는 의도가 아닐까. 그게 뭐가 됐든 맛있고 설렐 일이다.


수요일에 교육을 받고 목, 금요일에는 평소 근무지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이쯤 되니 이번주 전체가 스타벅스를 위해 돌아가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온전한 월요일, 화요일이 아니라 스타벅스를 준비하기 위한 단련 시간 같다. 서류를 준비하러 다니고 옷을 사러 다니고 긴장도 해야 하니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전, 스무 살에는 스타벅스라는 카페가 생소했다. 유명하기야 했지만 뭔가 다른 카페와는 다르고 더 어려웠다. 번호표를 불러주는 것도 그렇고 그 자리에 선 내가 왠지 어색하고 투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는 그 밖을 지나가다가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허세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시끄러운 스타벅스 안에서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분위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이 항마력 딸린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내가 끼지 못하니까 열등감을 가졌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스타벅스에서 생각에 잠기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으니.


카페라는 공간이 주는 그 분주함과 편안함. 생산성을 높이는 적당한 소음과 음악, 커피 냄새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룰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카페에서 좋은 글을 쓰기도 하고 살아갈 마음을 고쳐먹기도 한다. 내가 일하게 될 스타벅스도 누군가에게 그런 공간일 테다. 그 신성한 시간에 훼방이라도 놓지 않게 적절히 스며들어야지. 누구보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야지.


9월부터 학업과 일을 겸하려면 몸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할 것 같다. 바쁠 때 더 생기로운 나로서는 기대가 되기도 하지만, 지치지 않도록 페이스를 잘 유지해야 할 테니까. 막학기 시간표를 들여다보니 월, 화, 수, 목요일까지 학교에 가게 생겼다. 그렇다면 나는 하루에 학교와 스타벅스를 오가는 일을 일주일에 몇 번이고 해야한다는 뜻이다. 아주 고단할 예정이지만 동시에 아주 씩씩할 예정이다. 씩씩한 게 내 무기이자 열정이고 정체성이니까.



_이미지 출처: Bored Panda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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