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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Dec 22. 2022

종이책이 뭐라구

너 뭐 돼 …??!


종이책에 대한 로망이 있다. 걔들은 질감도 좋고 냄새도 좋은 데다가, 책들이 둘러싸인 공간은 웬만하면 다 좋다. 서점이든 출판사든 책방이든 도서관이든, 그 중 어느 하나가 미래의 직업 공간이 된다면 좋겠다는 막연한 상상도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출판사 직원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책이 주는 편안함이 좋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볼수록 출판사 직원이 되면 책을 싫어하게 될 것만 같다. 어떤 취미든 업으로 삼아서 즐길 수 있으려면 대단한 정신 건강과 마인드 세팅이 필요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학창 시절, 책과 글쓰기가 좋아 문예창작과를 진학하려고 했던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문예창작과라는 학과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 완벽한 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책을 너무나 좋아했던 엄마 아래서, 각종 글쓰기 대회를 휩쓸던 내가 가야만 할 길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마도 이 과를 졸업한 뒤에는 출판사에서 일하면 되겠지. 난 책이 둘러싸인 공간을 좋아하니까. 그러나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기 위해 입시 시를 끊임 없이 생산해내던 나는 진학하기도 전에 질려버렸다. 전혀 즐겁지 않았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른 지금, 용돈 벌이를 위해 카페 알바를 전전하던 중 평소 좋아하던 스타벅스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봤다. 이런 작지 않은 결정에 있어 과감하고 충동적인 나는 하루 정도 고민한 뒤에 바로 지원을 해버렸다. 스타벅스에서 알바라니, 평소 커피에 관심도 많았고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으며 그 공간이 아늑하고 편안해서 좋았다. 그렇게 면접과 교육까지 끝나고 첫 출근을 하자마자 환상은 깨져버렸다. 거긴 그냥 ‘커피 좋아 인간들’이 상주하는 아비규환 전쟁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까지 좋아하고 있는 나의 ‘글쓰기’가 업으로 전복될 경우 싫어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불행히도 나는 나의 많은 취미들을 업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이런 자기 PR 시대에서는 늘 명분이 존재해야 했고, 블로그나 인스타를 해도 팔로워 숫자가 커야 유의미하며, 글을 쓰면 프로젝트에 제출하든 공모전에 당선되든 그에 들인 시간만큼 충분한 결과가 따라줘야 했다. 그럴 듯한 산출물을 제공해야만 좋아하는 일을 정당하게 이어갈 수 있는 피곤한 사회에서, 나는 홀린듯 브런치를 시작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제출하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 브런치는 온전한 나만의 공간이었다. 블로그도 인스타도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 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넘쳐나는 공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브런치만큼은 내가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나의 모든 치부와 실패를 들켜도 겁나지 않을 사람들에게만 알리고 싶었고, 아직까지 그렇게 이어가고 있다. 간헐적으로 글을 올리지만 점점 그 주기가 짧아지고 내게 글을 쓰는 근육이 붙을 만큼 익숙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편씩 올리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쓴 브런치북은 ‘아빠를 사랑하고는 싶은데’라는 제목의 글이다. 가족 에세이로, 엄마 없이 아빠와 남동생과 14년을 살아오면서 부딪히고 힘들어하고 또 회복되던 삶의 조각들은 담았다. 마음속에만 꾹꾹 눌러두었던 생각과 이야기들이 글로 분출되는 놀라운 시간들이었다. 글은 내게 치유의 과정이 되었고, 그토록 미워하고 애정하던 가족들에 대한 마음이 글로 정리될수록 편안함을 찾아갔다. 무엇보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통쾌했다. 나는 당돌하기는 해도 솔직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므로.


이 브런치북을 쓰는 동안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한 교수님을 만난 게 가장 컸다. 어쩌다 보니 대학에서 1:1로 전공필수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는데, 그 교수님과 이 브런치북에 대한 계획을 공유하면서 게재하기 전에 한 번씩 피드백을 받아서 올렸다. 때로는 너무 감정적인 글이라 우회가 필요했고, 논점에서 벗어난 글은 고쳐쓸 수 있게 되었다. 교수님과의 메일은 늘 편안하고 따뜻했고 안정적이었다.


그리하여 이 브런치 프로젝트의 결과가 나오는 날을 플래너에 추가해두었다. 12/21일 수요일, 나의 월급날이자 ‘에밀리 파리에 가다’ 시즌 3가 개봉하는 날이기도 하다. 딱 이 프로젝트 결과만 나오면 많이 슬펐겠지만 다른 작은 행복들로 메꿀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전날에는, 내일이면 나의 삶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당선되면 어떡하지? 50편의 당선작 중에 내 글이 있으면 어쩌지 걱정하기도 했다. 아마도 결과를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겠지. 집에서 소리를 지를 텐데 동생이랑 아빠한테 이 책의 제목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어쩌면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눈이 와서 어쩐지 쿰쿰하고 어두운 하루를 맞이했다. 다시 한번 나의 연약함을 실감하면서. 나를 향한 신의 계획과 방법을 따르기로 다시 다짐하면서. 올해 초에 세워두었던 나의 목표는 ‘단단한 마음을 갖는 것’이었다. 결국은 그 목표를 따라 가게 되나 보다. 어려움이 있을 수록 더 단단하고 밀도 있어지는 나의 삶과 글을 생각하며 쉽게 무너지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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