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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Dec 23. 2022

생각이 많은 사람은 왜 그럴까

모든 생각은 꼬리를 문다. 나 같은 사람에게 영혼은 생각의 집합체이다. 골똘하게 생각하고 몰두하고 몰입하다보면 어느 문제든 결론을 내리게 되어있다. 그러면 그 인과관계를 혼자 정리해서 피치할 준비를 한다. 나의 결정을 공유하고 납득시켜야 할 사람들에게. 가족과 친구와 남자친구에게.


이 모든 과정을 누군가와 같이 한다고 생각하면 막막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고 참고하기는 하지만 결정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나의 생각과 나의 주관에 옳은 일을 하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 특히 가족에겐, 생각의 과정을 절대 공유하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정돈된 결론만을 전달해왔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도, 한 번도 아빠에게 그런 말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수 개월을 기다리다가 폭죽을 터뜨리듯 아빠에게 다가갔다. 너무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일이라 아빠에게 가는 길에 같은 손과 같은 다리를 들며 갈 뻔했다. 대학을 갈 때도, 장래희망을 정할 때도 그랬다. 돈을 쓸 때도 그랬다. 내겐 모든 일이 혼자만의 결정이었다.


아빠집에서 24년간 살아온 사람으로서, 가끔은 내가 책임을 지려고 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무책임한 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혼자만의 일이 아니며, 모든 관계와 연결 고리들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아빠는 내게 어마어마한 노동과 노력을 들인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아빠는 나의 결정을 웬만하면 존중하지만 항상 걱정하고 브레이크를 건다.  떠나게  3개월 간의 여행도 그렇다.


언제부터 세계여행의 꿈을 꾸게 됐는지 모른다. 아마도 대학에 들어가고부터일 것이다. 그래서 1학년 때는 같은 여행의 꿈을 가진 친구와 교환학생을 준비하기로 했다. 토익보다는 토플을 준비하는   유리하다고 하기에, 영어로 읽고 쓰고 듣고 말할  있다는 토플 시리즈를 덜컥 샀다.  그대로  4을 손에 들었는, 재수까지 해서 들어간 대학 1학년  만한 독기는 없었다. 그리고 2학년이 되자마자 코로나가 터졌다.


1학년  갑작스러운 학교 생활과 과도한 사회생활 및 회식 지쳐버린 나는 2,3학년 동안 쉬기 시작했다. 물론 대외활동이나 자격증 등은 쉬지 않았지만 코로나가 터진 마당에 언제 떠날 지도 모르는 교환학생을 준비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내게는 무엇보다 소중한 남자친구가 생겼다. 그건 해외여행과 교환학생이라는 모험을 잊을 만한 매력적인 무엇이었다.


그렇게 해외여행은 내게  건너간 일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길게 해외여행을 간다면 신혼여행 쯤이  것이라 생각했. 곧 다가올 생각을 모른채! 그러다 <연금술사>라는 책을 봤다. 거기엔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지만, 내겐  명제만 . ‘의 자아 실현을 가로막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 내가 무언가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상황과 환경 탓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바꿔 먹으면 무엇이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결심했다. 해외여행을 가기로. 그것도 가장 불안하다는 대학 졸업 후에! 이렇게까지 장기간 생각의 꼬리를 물어온 것은 그만큼 대단한 모험이기 때문이다. 평생 아빠집에서 살아온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모두가 취업 걱정을 하는 마당에, 1년간 쉬면서 여행도 하고 글도 며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해본다는   시대에 굉장한 도전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쉬기로 했다! 여행을 완전히 다녀오기 전까지는 자격증과 원서 준비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휴학도 한번 없이 24년간 달려온 인생인데, 1 정도는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  모든 생각의 과정을 거친 뒤에 아빠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사실 허락을 받아야  일이지만  마음은 선전포고. 나의 돈과 시간을 들여 가는 여행이니, 아빠의 간단한 허락만으로도 충분할 것이었다.


결국 아빠는  번의 질문 끝에 허락을 고했고, 나는 이제야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카페 알바 말고는 다른 고정적인 일이 없는 지금, 나는 마음껏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종강한  일주일이 된 오늘, 갑자기 밥을 먹고 치우다가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해장국을 먹고  뼈다귀를 치우다가 방바닥에 떨어뜨린  시발점이었다. 동생 일어나서 해장국을 먹으려다가 내가 뼈다귀를 떨어뜨리고 갑자기 화를 내며 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나도  이러는지 모른다.


방에 들어가서 다른 일을 하다가 한참을 생각했다. 골몰했다. 그게 나의 특기니까. 내가  화가 났는지,  슬프고 억울한지 돌아보려고 했다. 그러다 예전에 아빠가 뼈다귀 해장국 소스 뚜껑을 열다가 터뜨리고는 화를 내며 씩씩거렸던  생각났다.   나는 해장국을 먹고 싶었을 뿐인데, 뼈다귀를 발라먹고 싶었을 뿐인데 화가  아빠를 보면서 무섭고 어이가 없었다. 그게 그렇게 화를  일인가.


그런데 오늘 내가 똑같은 이유로 화를 내고 있다. 어쩌면 메뉴도 똑같이. 뼈다귀  흘렸다는 이유로, 닦기 귀찮고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아마도 그걸 흘리자마자 갑자기 밥에 대한 억울함이 밀려왔던  같다. 내가 책임지고 돌보아야  것들, 우리집에서  말고는 김치볶음밥을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하자 동생이 그게 뭐가 문제냐고 말했던 , 내가 이제는 아빠집에서 나갈 때가 됐다고 생각하게  . 뼈다귀를 흘리는 동시에 이 수많은 생각을 했나보다. 놀랍지도 않다.


화를 삭이고 거실로 나와 빨래를 개기 시작했다. 내일이면 크리스마스 이브라 친구들이 우리집에  것이었다.  친구들에게 오늘 일을 물어보겠다고 생각하며 옷가지를 주섬주섬 들어올렸다. 내가 이런 이유로 화가 났고, 이제는 독립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게 됐으며, 너희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화가 나는  이상한 일인지. 아마도 친구들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하겟지만, 나는 정말로 이상한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내가 과민반응하는 거라면 고치고 싶었고, 말해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러다 막상 이런 이야기를 아빠와   없다는  눈물이  만큼 속상했다. 사실 내게 눈물은 언제든 최소한의 노력으로 쏟아낼  있는 무엇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대거 쏟아져내렸다. 맨날 보는 드의 주인공들처럼, 가족과 솔직한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소에는 아빠 방에  찾아가지도 않고  말이 있어야만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나지만, 아무 때나 들어가서 털썩 누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빨래를  정도  무렵 동생이 방에서 나왔다. 아빠가 태국으로 골프 여행을  지금, 동생은 아빠 방에서 지내고 있다. 거기가  크고 화장실도 있고, 전기장판도 있어서 좋다나. 그게 나의 동생이다. 점점 아빠와 하나가 되어가는  같다. 그가 갑자기 환호를 지르면서 나온다. 오늘 날씨가 너무 추워서 약속이 취소됐다는데, 그게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나라면 어떻게든 나가보려고  텐데.


걔가 같이 빨래를 개며 자기 친구 얘기를 한다. 나는 순간 그게 동생 얘기인 줄 알고 인상을 잔뜩 쓰고 답하지만, 친구 얘기라는 사실에 민망해진다. 가족 일이라면 매사에 진지하고 억울하고 슬퍼지는 게 문제다. 가족을 하나하나 떨어뜨려놓고 볼 수 있다면. 좋은 일이 일어나면 함께 적당히 기뻐해주고 슬픈 일이 일어나면 함께 적당히 슬퍼해줄 수 있는 친구 같은 사이라면 좋을 것이다.


나는 우리 아빠가 닫힌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평생. 그러나 아빠는 자기 엄마도 잃어봤고, 자기 아빠도 잃어봤고, 아내도 잃어본 사람이다. 장남으로 살면서 작은  양보 받았을지 몰라도  전체를 가족을 위해 투자해온 사람이다. 나와 동생 말고 고모들에게도. 스무 살이 되자마자 사회 생활을 시작했으며, 동시에 야간 대학도 다녀본 사람이다. 그러니 아빠와 상의할  있는  생각보다 많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독립적이면서 가족을 위해 애써온 사람도 없으니까. 다음 주에 아빠가 돌아오면 여행은 어땠는지 물어보면서  얘기도  곁들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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