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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Dec 28. 2022

겨드랑이 잔혹사


한 달에 한 번, 약속된 시간에 성형외과에 방문한다. 겨드랑이를 지지러 가는 길이다. 병원 문을 열고 들어가면 프로페셔널하게 지친 간호사 언니들이 자리로 안내해준다. 나는 늘 친구와 함께 이 약속에 참여한다. 우리는 커튼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탱크톱을 입은 채로 머리에 손깍지를 낀다. 그러면 간호사 언니가 들어와서 차가운 젤을 발라주고, 이윽고 젊은 남자 선생님이 들어와서 정성스럽게 겨드랑이를 지져준다. 이것이 하나의 코스다. 처음 겨드랑이를 지지러 왔을 때는 웃겨서 미치는 줄 알았다. 내 순서가 먼저 끝나고 옆 커튼이 확 열리면서 친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봐버렸기 때문이다. 친구는 내 상스러운 모습을 보게 될까봐 절대 내 쪽을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독하다.


그런 날도 있었다. 상의를 벗어야 하는데, 원피스를 입고 와버린 거다. 원피스를 벗으면 나는 상하의가 둘다 없는 상태로, 팬티를 겨우 가릴 듯한 탱크톱을 입고 누워서 의사 선생님을 맞이해야 한다. 그런 불경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나와 달리 내 겨드랑이 메이트는 준비성이 철저한 편이다. 그는 병원에 구비된, 신원이 불분명한 탱크톱을 입기보다는 나시를 미리 입고 오는 편이었다. 그러면 상의만 훌러덩 벗어버리고 준비 끝이다. 겨드랑이를 지지러 가는 마당에 원피스를 입고 가는 나와는 달리 철저한 친구다.


우리는 겨드랑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채로 이 장기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일년 동안 12번을 와야 하는데, 털이 점점 얇아져서 거의 보이지 않기는 하지만 결코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세 번째 받은 무렵에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어차피 학교 가는 길에 있는 병원이었으므로 귀찮긴 해도 꼬박꼬박 자리를 지켰다. 우리 겨드랑이는 점점 깔끔해졌고, 이제는 손을 댈 필요도 들여다 볼 필요도 없어졌다. 여름에도 나시를 마음껏 입고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부끄럼 없이 만세도 할 수 있었다. 돈을 주고 털에 관리를 받는 어른의 일이었다.


나는 털이 무성하고 두꺼운 편이라 의사 선생님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내 앞에서 헉, 하고 놀라지는 않았지만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긴 했다. 털이 두꺼우신 편이라 좀 따가우실 거예요. 털도 높여주고 나도 높여주는 말이었다. 병원에서는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혹은 겨드랑이 피부가 예민하고 붉으니 진정 크림 같은 걸 발라주라고 했다. 얼굴에 잔뜩 나 있는 여드름 관리하는 것도 귀찮고 힘든데 겨드랑이 피부까지 관리해야 한다니,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애초에 나의 피부는 주인과 척을 지기로 한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은 다른 남자들이었다. 그냥 남자 사람들은 당연히 아니고 젊은 남자 의사들이었다. 나는 탱크톱을 입고 머리에 손깍지를 했기 때문에 내 머리 위로 들어오는 선생님을 쳐다볼 여유가 없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매번 다른 선생님이 들어오는 듯하다. 스킬도 각기 개성이 있다. 어떤 선생님은 내 머리 위에서 레이저 건을 발사한다. 꼼꼼하게 겨드랑이 위아래를 왔다갔다하며 털을 쏘아버린다. 다른 선생님은 내 겨드랑이 아래편에 서서 나를 바라보면서 시술을 한다. 정말이지 그런 과도한 친절에 눈을 뜰 수가 없다.


그렇게 커튼으로 허술하게 나를 가리고 있는 그 방에 들어갈 때면 나는 탈의의 선수가 된다. 혹시라도 누군가 커튼을 확 열어젖힐까봐 상의를 훌러덩 벗었다가 후다닥 입는다. 간호사 언니가 발라준 젤이 휴지로도 다 닦이지 않아 찝찝하지만 어쩔 수 없다. 언제까지 겨드랑이만을 위한 이 방문을 계속해야 할까. 12회 중에 10회나 받았지만, 영구적으로 유지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분명 2회를 더 받고도 일 년쯤 쉰 뒤에 다시 겨드랑이를 지지러 올 것이다. 그때도 차가운 젤이 발려지고,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겨드랑이를 내어줘야 할 것이다.


네일아트나 속눈썹펌과는 달리, 제모를 하고 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도 못한다. 가깝지 않은 누군가가 물어보면 그냥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그러면 더 이상 묻지 않는다. 이 부위 이름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수치스럽고 상스러운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인데, 사실 조용히 관리는 제일 많이 받고 있다. 겨드랑이 입장에서는 잘 자라고 있는 털들을 깎이고 지져지고 쏘이는 것이겠지만. 그러니 이 장기 프로젝트가 끝나가는 지금, 별 생각 없이 받고 있던 레이저 제모에 겨드랑이 잔혹사라는 이름을 붙여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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