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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Dec 19. 2022

찌찌의 무사함에 대하여

드라마 <볼드타입>


‘볼드 타입’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다. 뉴욕 도시에 사는 세 명의 여성이 잡지사에서 일하면서 벌어지는 우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섹스 앤 더 시티의 드라마 버전인데, 좀 더 진보적이고 정치적이고 화끈한 느낌이다. 더 야하기도 하고…. 사실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세 번 정도 반복해서 봤다. 드라마를 처음 볼 때는 흥미롭고 새로운 마음으로, 두 번째 볼 때는 조금 더 집중하는 마음으로, 세 번째 볼 쯤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본다. 마음에 드는 드라마는 최소 3번을 봐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어서…. 아무튼 프렌즈와 모던패밀리 다음으로 반복 시청하는 드라마가 이 볼드 타입이다.


이 드라마가 내게 주는 영향은 적지 않다. 주인공 중 한 명인 ‘제인’이 특히 그렇다. 이 여성은 일명 ‘tiny Jane’이라고 불리며, 글과 회사와 친구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제인은 엄마가 없다. 유치원 때 엄마가 유방암에 걸려 돌아가셨다. 나는 10살 때 같은 일을 겪었다.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그건 죽음과 이별이다. 나는 14년이 지난 엄마의 죽음에 여전히 조금은 얽매여있다. 아마도 평생 이럴 테다. 그래서 제인은 엄마와 같은 돌연변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지 검사를 하게 된다. 아주 긴 고민과 더 큰 결심 후에.


나는 유방암에 걸린 사람의 딸이라면 같은 유전자가 있는지 검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심지어 우리 엄마에게 어떤 변이가 있었는지는 아빠도, 아무도 모른다. 아빠가 모른다고 하면 더는 물어볼 사람이 없다. 유전자 검사는 대학 병원을 가야 할 수 있다고 하기에, 우선 초음파 검사를 선택했다. 가기 전에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찌찌에 차가운 젤이 올라오자마자 겁을 잔뜩 먹었다. 왜 초음파 검사를 엑스레이랑 헷갈렸을까. 그보다 훨씬 길고 추운 검사였다. 의사 선생님도 내가 겁에 질려보였는지 자기가 검사하다가 멈칫해도 놀라지 말라고 했다.


제인은 자신의 엄마가 유방암에 걸렸던 서른 초반의 나이에 자신도 같은 일을 겪지 않을까 무의식적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기저에 깔린 의식이라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를 통해 나 역시 내게 달린 무언가가 언젠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갖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이런 문제는 스스로 깨닫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제인이 매일 자가진단을 하며 자기의 찌찌를 눌러보고 주물러보고 매만지는 일들을 나 역시 의식될 때마다 따라해왔다. 겨드랑이 언저리를 만져보고 혹시 무언가 잡히지는 않는지, 혈관이 막히지 않도록 엄지 마디로 꾹꾹 눌러주기도 했다.


죽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죽음을 기억하며 늘 곁에 두고 사는 것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세일지도 모르나, 때로는 그런 의식이 삶을 소중하게 만들기보다는 불안하게만 할 때도 있다. 나는 내 주변인들이 다칠까봐, 또는 죽을까봐 늘 염려하는 습관이 있다. 남자친구가 장거리 운전을 한다고 하면 너무 빨리 달리지 말라고, 조심히 가라고 신신당부를 하게 되고, 아빠가 비행기를 탄다고 하면 그 사실이 생각나는 밤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친구가 밤새 토를 했다고 하면 가능한 빨리 병원에 가봤으면 좋겠다. 내가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무언가의 전조 증상이 아닐까 하는 그런 두려움 속에 산다.


암은 한 세대를 건너서 발병한다는 속설이 있다. 그것이 진실인지, 축적된 사례에 의해 전승되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내겐 암에 걸린 엄마도 있었지만 암에 걸린 할아버지도 있었으니 빠져 나갈 어떠한 틈도 없는 셈이다. 이렇게 글로 옮기니 심각해 보이지만 나 역시 이 사실을 많이 잊고 산다. 내게는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언젠가는 유전자 검사를 필히 해보아야 한다는 것. 내가 고위험군인 것은 확실하나, 가족 병력이 없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인간은 모두 위험하고 유약한 존재라는 사실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내 찌찌가 아직은 잘 버텨주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 글의 제목 역시 학기 중에 불현듯 떠올라 나의 투두 리스트에 옮겨 두었던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내 찌찌가 무사하다는 사실에 감사해서. 이제 마지막 종강도 했고, 사실상 대학을 졸업한 것과 다름 없으니 이런 사소하고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많이 기록해보려고 한다. 내가 그동안 학교 생활과 스타벅스 생활로 인해 사소하고 중요한 것들을 얼마나 많이 잊고 살았는지 모른다.


그저 시간을 보내고 돈을 쓰고 돈을 받고 나의 몸을 혹사시켰던 일들에서 한 발 떨어져 볼 셈이다. 물론 아직 학교만을 뗐을 뿐이지만, 나에게 글을 쓸 충분한 시간을 벌어주었으니 후회 없이 활용해보려 한다. 죽음과 글과 여유를 동시에 생각하는 나의 모순이, 삶의 풍요 속에서 충분히 헤엄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더는 무언가 빨리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좋은 성적을 받고 대회에 당선되어야 한다는 피상적인 문제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하고 싶다. 나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찌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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