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열음 Jan 12. 2023

무해한 언니들

무해하다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많은 책과 글의 제목으로 쓰이던 때가 있었다. 아직도 무해하다는 말이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세상의 수많은 유해한 것들로부터 보호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청정지역, 그린벨트, DMZ, 뭐 그런 것들…


나에겐 언니들이 있다. 피로 통하지 않고 그리스도로 통하는 언니들. 내가 사랑하는 교회 언냐들. 가족이라고는 남동생과 아빠뿐인 나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잔뜩 가져다주는 사람들이다. 사실 스무 살이 지난 이후로 나를 챙겨주는 언니들은 항상 있었다. 지금은 만나지 않더라도 언젠가  번은 다시 만날  같다고 낙관하면서, 그들의 영향을 생각한다.


나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해주었던 언니, 무던하지만 예쁜 카페에 데리고 다녀주던 언니, 만나자고 하면 항상 밥이든 카페든 사주려던 언니, 좋은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알려주던 언니, 약지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다니면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해주던 언니, 내가 무슨 말만 해도 뒤집어질듯 웃어주던 언니, 나를 뒤집어지게 웃게 하던 언니…


겹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많은 언니들의 얼굴이 스친다. 이들 중 누구도 내게 영향을 끼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우리는 서로 실수하고 서로 회복하면서 모나지 않은 관계를 만들어간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만나고 생각하고 사랑하는 언니는 두 명이 있다. 둘 모두 내게 지나치게 무해한 사람들이라, 그들과 함께하면 괜히 천진해지고 부드러워지고 막연해진다. 우리가 커지고 세상은 작아진다.


이 언니들에 대해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둘 모두 내게 없는 것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언니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정은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강아지 같은 사람이다. 말도 정말 많은 엣푸피로, 열댓 명의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 우선 정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나면 나는 턱에 손을 괴고 집중한다는 표시를 한다. 마음껏 즐기라는 뜻이다.


분명 나는 관종이 맞지만, 이목이 집중되면 부끄러워진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의 부족한 부분들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다. 얼굴이 금방 달아오르고 다시 금방 가라앉는다. 가끔은 내가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촉각이 극대화되면 나는 어쩔 줄을 모른다. 분명 덤덤한 척하지만 빨리 붉기가 사라지기를 바란다. 사실 항상 경험하는 일이라 이제는 익숙한 기다림이다.


이런 나와 달리! 정은 이러한 것들을 충분히 즐긴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풀어낸다. 때로는 재밌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한 정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쉽게 매력을 느낀다. 이것저것 생각이 많은 나보다는 그가 더 단체모임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내게도 자주 필요해지는 능력이다. 자주 인상을 찌푸려서 미간에 주름이 생기기보다는, 많이 웃어서 눈가에 자연스러운 주름살이 접히는 언니로부터 많은 생각을 가져온다.


다른 언니는 신이다. 신은 노는 것이 좋은 엔푸피다. 항상 웃고 있지는 않아도 진지하면서 마음은 항상 열려있는 편이다. 그리고 정말이지 역동적이다. 이 언니가 있을 땐 무언가 움직이는 활동들을 자주 목격한다. 한 날에 밥과 포켓볼과 볼링과 카페와 산책을 모두 겸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이런 일이 일상적이지는 않지만, 에버랜드에 가려다가 취소되면서 이렇게 놀았다고 한다. 오히려 에버랜드가 더 잔잔했을지 모른다.


신은 강아지를 닮은 고양이 같다. 혼자서도 잘 있지만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는 에너지가 배가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품는다. 때로는 그 가슴이 얼마나 큰지 폭 안겨 있고 싶어진다. 자연을 보면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도 하나님께 먼저 감사하는 여자 박보검 같은 언니. 심지어 신은 6남매 중 둘째라 그 사실만으로도 안정감을 준다.


많은 가족을 둔 사람들은 대체로 유희를 즐길 줄 알며, 사람들과 지내는 게 익숙해서인지 그들만이 가진 풍요가 있다. 신도 그런 사람이다. 독립적이면서도 또 무지하게 공동체적인 사람. 그가 나의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만으로도 더는 외롭지가 않아지는 편이다. 최근에 일을 그만두고 해외로 봉사활동을 떠나면서 머리를 싹둑 자른 사진을 보았다. 앞으로 우리가 어디서 더 만나게 될지는 미지수라도, 분명 그가 다시 머리를 기른 모습을 한번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은 곧 결혼하고, 신은 이미 해외로 떠났다. 언제든 옆에 둘 수 있는 언니들이 아니라도, 우리는 많은 영향을 주고 받으며 또 새로운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우리들만의 관계에 매몰되지 않도록, 언제든 새로운 언니동생들을 마음에 품을 수 있도록 자리를 항상 비워두는 편이다. 내게 너무나도 무해하고 사랑스러운 정과 신처럼, 오랜 시간 여운이 남는 언니가 되어줄 수 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전자책의 가벼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