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열음 Jan 30. 2023

아픈 날의 자유

내가 얼마나 아픈지는 정확히 나만이 감각할  있다. 그리고  아픈 만큼 자유로워진다. 아프니까하는 변명은 어느 곳에든 성립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지금 공식적으로 아프다.  코로나에 걸렸으니까.


공식적으로 아프다는 게 딱 맞다. 사실 별로 아프지 않기 때문이다. 과대광고를 하는 심정으로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한다. 코로나에 걸렸다고 인스타 스토리에 떡하니 올린 이유도 그렇다. 내가 보이지 않는 공식적인 이유가 있답니다.


그러나 아픈 만큼 자유로워진다는 건 또 무얼까. 내게는 투두 리스트가 있다. 매일 일어나면 이미 어젯밤에 추가해둔 할일 목록을 보며 하루를 헤쳐나간다. 가끔은 그게 엄청난 짐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날들은 계획으로 인해 오히려 자유를 느낀다. 지독한 제한 속의 자유랄까.


코로나를 확증받고 난 후부터는 투두 리스트를 싹 지웠다. 매일매일 처리해야 했던 나의 챌린지들, 생산적인 일들은 모두 안녕이니까. 나는 공식적으로 쉴 권리를 얻었다. 일주일 동안 스타벅스도 가지 않을 것이고(일하러), 글과 책도 멀리 할 것이고, 잔뜩 이완되어 넷플이나 볼 계획이었다.


그러나 애초에 침대 인간이 아닌 나는, 딱 하루 동안 가만히 누워서 보고, 먹고, 자고, 생각하다가 초췌한 심정으로 일어난다. 이건 나의 체질과 맞지 않는 일이다. 저번에 코로나에 걸렸을 때는 거실 생활을 했으나 이번에는 방에 갇혔다. 게다가 창문이 얼어서 열리지도 않는다. 마실 공기도 없다니 진짜 큰일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방은 내가 뱉은 숨으로만 가득 차게 될 것이었다.


정확히 격리 기간의 절반이 흐른 지금, 잠시 이완되었다가 불안했다가 다시 안정을 찾는다. 일상의 일들을 재개했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삶 속에 비공식적인 일들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새로 시작한 스페인어 공부 같은 것. 이슬아의 책 같은 것. 전자는 금방 질렸고 후자는 아직도 건재하다. 아마 여행 갈 때도 100%의 확률로 이 두꺼운 책을 챙겨가게 될 것이다.


나는 아프다는 이유로 자유를 얻었지만, 실은 별로 아프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알기 때문에 기어코 세상에 반납하고 만다. 나를 걱정하는 수많은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나의 안부를 몇 번이고 전해야 했지만, 무척이나 괜찮다는 걸 그들이 잘 알지 모르겠다. 이미 격리가 시작되기 전에 나는 한 차례 아팠으므로 지금쯤 바이러스들이 전멸했을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고단한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숨에 대한 것이다. 숨이라는 게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한 무엇이라 잘 때마다, 또는 잠에서 깰 때마다 조금씩 모자란 게 아주 불편하다. 의식적으로 숨을 쉬려고 하면 잠에 들기가 어렵다. 고르게 숨을 쉬며 자는 게 그리워질 줄이야. 숨이 답답해질 때마다 나의 폐가 분명 고장났다는 걸 느낀다.


한번은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숨을 헤엑- 하고 들이마셨는데, 목젖이 움직였는지 갑자기 숨이 막혀서 1분 동안 기침을 했다. 처음엔 사레 들린 줄 알고 웃던 오빠도, 내가 기침하는 중간중간 숨을 간절하게 들이쉬는 걸 보고 진지하게 놀라버렸다. 나 역시 그렇게 거친 호흡은 처음이라 많이 놀랐다.


어쩐지 아프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숨쉬기에 대해 쓰게 됐다. 내가 숨 쉬는 데 지장이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동시에 몸에 대한 감각도 점점 예민해지고 있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숨소리가 고른지 자꾸 의식하고 감각하게 된다. 어찌 됐든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들여다보게 된다.


방에 혼자 있으려니, 정말 혼자만으로 충분해져야 하는 시간이 온다.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카페를 가거나 수다를 떨지 않아도, 혼자만으로 충만한 하루를 보내야 하는 건 조금 버거운 일이다. 늘 세상에 한 발을 걸치고 조금이라도 연결되어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항상 일로 바쁘게, 글로 바쁘게, 나에 대한 생각을 요리조리 피해다녔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지각하지 않기 위해.


그러나 언젠가 그런 순간은 도래하기 마련이고, 내게는 지금이다. 오직 나밖에 없는 공간과 시간 속에서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귀찮아하는지, 어떻게 반응하는지 감각하게 된다. 외롭고 설레는 동시에 두려운 일이라 자주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아무리 부족하고 꼴보기 싫어도, 이것도 나라고 인정할 줄 아는 버릇을 기를 수밖에 없다. 이 좁은 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아를 긍정해야 한다.


이런 보이지 않는 수고로운 시간들이 쌓여야 미래의 내가 부끄러운 어느 날에도, 스스로를 많이 탓하지 않을 수 있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는 동안 스스로가 자주 부끄럽고 못미더웠으므로 적지 않은 확률로 나를 탓하는 때가 올 것이다.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든 떳떳한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단단해져야 할 필요를 느낀다.

작가의 이전글 무언가를 치워주는 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