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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Jan 21. 2023

무언가를 치워주는 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엌으로 왔다. 커피를 한잔 내려먹고 싶어서였다. 요즘은 스타벅스에서 복리 원두로 나눠준 원두를 내려먹는다. 나의 커피 역사는 돌체구스토 머신에서 일회용 드립백으로, 직접 우린 콜드브루로, 그리고 드립으로 왔다. 생각해보니 내 손으로 꾸준히 무언가를 해먹는 일, 시키지 않아도 오래 하고 싶은 일은 커피를 만들어먹는 것이었다. 카페에서 일하고 있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카페에서 일한다고 해서 집에서 커피를 안 먹는 사람은 많이 못 본 것 같다. 오히려 난 누군가를 위해 커피를 만들어주는 것에 질려서, 나를 위해 커피를 만드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또는 밖에서 누가 만들어주는 커피를 사먹는 것에도. 집에서 커피 한 잔을 내리면 끝까지 다 먹지도 않아서 동생한테 잔소리를 듣지만, 그럼에도 매일 한 잔씩은 만들어 먹는다. 어떤 신성한 의식 같기도 하다.


커피를 내리기 전에 식탁 한 가운데 있는 비닐 껍데기를 봤다. 본 즉시 바로 옆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린다. 별 생각 없이 버리다가 이걸 까먹고 나간 사람은 아빠라는 생각이 든다. 빵을 까서 먹고 비닐만 식탁에 놓고 가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내 친구의 아버지도 자주 그러신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아빠들의 특징일까.


그렇게 비닐을 한가운데 버리고 가도 집에 돌아오면 치워져있기 때문에 그런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 치워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치워주는 것에 대해 나는 조금 할 말이 없다. 나 역시 누군가 많이 치워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빠는 차려주지는 못해도 치워주기는 잘하는 사람이다. 특히 내가 요리를 했거나, 우리가 밥을 시켜 먹었거나 하면 치워주는 건 늘 아빠의 역할이었다.


우리가 같이 먹지 않아도, 나 혼자 먹은 것도 조용히 치워주었다. 아빠의 속내까지는 어떨지 몰라도. 아빠가 있는 한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도 않고, 플라스틱을 버리러 가지도 않고, 여름에 사용한 선풍기를 치우지도 않고, 설거지한 그릇들을 다시 장에 넣지도 않았다. 만약 아빠가 없었다면 분명 내가 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건 치워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달에 아빠가 일주일씩 두 번 정도 여행을 다녀왔다. 아빠가 첫 번째 여행을 떠난 동안, 나는 음식물 쓰레기를 열심히 버렸다. 그리고 두 번째 여행을 떠난 동안은 음식물 쓰레기를 하나도 남기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주어진 걸 다 먹었다. 먹기 싫거나 배부르면 남기라는 우리 아빠의 신조를 버리고 열심히 주어진 분량을 비웠다.


조금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불 정리도 하지 않는다. 이건 아빠가 치워주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내가 안 한다. 누군가 놀러오지 않는 이상은 그냥 아침에 나온 그대로 두었다. 필요성을 딱히 느끼지 못하고 산다. 그래서 내 이불엔 항상 박차고 나온 흔적이 있다. 정말 몰랐는데 얼마 전에 아빠가 한번 내 이불을 정리해주다가 나중에 결혼하면 어쩌려고 이러나, 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동생이 전해주었는데 아빠가 그런 말과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외였다. 역시 아빠는 직접 말만 하지 않을 뿐이었다.


최근에 내가 정리정돈에 약하다는 걸 느꼈다. 말을 정리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건 오히려 좋지만, 물리적인 정리에 대해서는 좀 약하다. 내 방은 기본적으로 부산스럽다. 책상에는 책이나 볼펜이나 머리끈 같은 잡동사니들이 올라와있고, 의자에는 옷이나 속옷이 반드시 걸려있으며, 거실이나 부엌에도 내 물건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같이 살기는 좀 피곤한 스타일이다.


치우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이전에 네가 싼 똥은 네가 치우고 가라는 말을 들었던 게 생각났다. 그게 생각난 이유는, 어제 스타벅스에서 그 말을 한 사람의 동생과 사촌동생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까지 모두가 같은 교회에 다녔는데 내가 문자 한 통을 남기고 갑자기 교회를 떠난 게 남은 이들에게 상처가 되었고, 나와 평소 친한 관계였던 언니이자 선생님이 똥을 치우고 가라고 한 것이다.


하필 내가 주문을 받아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들어왔다. 이전에도 한번 여기서 본 적이 있는데, 생각보다 자주 오는 것 같아서 당황스럽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주문을 맡기고 잠시 옷을 가다듬고 왔다. 안 그래도 내복 바지를 입고 들어온 게 더워서 갈아 입으려던 차였는데, 지금이다 싶어서 냅다 토꼈다. 스스로도 도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내복을 벗고도 오래 후끈했다.


그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은 나의 수치를 마주하는 것 같았다. 분명 나를 알아보고 아는 척을 할 것 같았다. 그럴 사람들이었고. 물론 아무 이유 없이 교회를 떠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는 충분히 곤란하고 허전하고 심란한 일이었을 테니. 결국 나는 또 이렇게 말로 정리를 한다. 글로 정리를 한다. 조금은 비겁하다고 느낀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다시 온다. 정리를 해도 금방 어지른다. 그래도 정리를 한다. 어찌 됐든 정리는 털고 일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금방 털고 일어났지만 그들에게는 아직 털고 일어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나도 나와 나의 공동체를 떠난 사람들을 털고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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