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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Feb 09. 2023

점장 수난시대

오늘 일어난 일들을 아직 다 소화해내지 못했다. 아마 이것들을 빠르게 소화하려면 아주 무신경한 의식과 튼튼한 정신이 필요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하던 카페 점장님이 탄핵을 당했다.


몇주전부터 나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스타벅스를 관두기 위해, 한달 전 고지를 하기 위해 타이밍을 보고 있었기 때문. 우리 점장님은 난데없이 과민한 사람이라, 어떤 식으로 부드럽게 말해도 생채기를 내다 못해 단숨에 나를 도려낼 사람이었다. 그의 반응을 여러가지로 예상해보며, 통제할 수 있는 선에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한다는 건, 태풍의 눈에 맨발로 걸어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자비한 일일 것이었다. 나는 그만둔다고 말하는 동시에 죄송하다고 연거푸 말할 생각으로, 스스로 정한 D-day에 가까워졌다. 그럴 수록 더 자주 울게 되었다. 오빠 가슴팍에 안겨서 눈물 자국을 선명하게 남기기도 했다. 그래도 안겨 울 수 있는 가슴팍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주 두려워 우는 내게 하나님은 수많은 말씀과 사람들을 보내주셨다. 파울로 코엘료의 <다섯번째 산>이라는 책을 우연히 읽게 되어, 두려움은 피할 수 없는 일이 오기 전까지만 유효하다고,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상기시키셨다. 그리고 오빠에게 내 눈물을 닦아주게, 수많은 친구들로부터 위로를 듣게 하셨다.


게다가 이런 찬양이 입에 맴돌기 시작했다. ‘주를 찬양.. 손을 들고 찬양..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최근에 들었던 적도 없는데 갑자기 이 찬양이 생각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님을 믿는다. 모든 것은 믿음에 달려있기 때문.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까..


그렇게 결전의 날이 다가와 오늘이 되었다. 친구들에게도 우울한 목소리로 오늘이라고.. 남자친구에게도 오늘이 와버렸다고.. 조금은 처진듯 하나 어쩐지 각성된 마음으로 스타벅스를 향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 아침이었다. 점장님은 오후가 되어서야 출근할 것이다. 내가 퇴근하는 그 때가 행동을 개시할 때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리 말해주어야 하나 고민하다보니 벌써 퇴근을 한 시간 남겨두고 있었다. 분명 내가 점장님에게 이야기를 하고 나면, 남은 사람들은 귀에 피가 나도록 나의 이야기를 들을 것이었다. 안 그래도 미안한데 놀라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그들에게 미리 언질을 주기로 했다.


‘사실… 저 한 달만 더 다니려고 해요. 오늘 점장님께 말씀드리려고요.’


그런데 파트너의 반응이 심상치 않다. 그러고는 오늘부터 점장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시간 반 뒤에 다른 사람이 우선 파견을 올 것이라고. 아침에 갑자기 정해진 내용이라고 했다. 이전부터 점장의 행동을 문제 삼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하루 아침에 변화가 찾아올 줄은 몰랐다. 이것이야말로 혁명인가.


그렇게 나는 싸워보지도 않고 이겨버렸다. 그냥 싸움을 없애버리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 줄도 모르고, 몇 주동안을 고심하고 씨름하고 울고 불고 걱정하고 난리를 친 것. 이렇게 허무하고 명랑하고 감사하고 눈물겨울 수가…. 당장 점장의 상태도, 미래도 모르지만 이로써 당장 나의 미래는 조금 더 선명해진 것이었다.


누군가를 자주 혼내고 울리던 사람이 일순간에 자리를 빼앗겨버리니, 조금은 아리송했다. 항상 뺏던 입장에서 뺏기던 입장이 되면 어떨까. 본인이 어떤 이유로 이런 일을 겪는지를 짐작이나 할까. 아마도 스스로 절대 모를 것이다. 왜 세상이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한참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시련을 주는 것 역시 세상의 몫은 아니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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